참선법 (參禪法) _ 수식관(數息觀)
[참선 (參禪) 법]
여러 명상(瞑想)법중 한국불교의 간화선(看話禪) 참선법이 수숭(殊勝)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용화 선원 “송담스님”의 참선법 법문을 발췌합니다.
참선하는 법 ;
1. 첫째 자세를 바르게 가져라. (가부좌)
2. 둘째 호흡을 바르게 해라. (단전호흡, 수식관)
3. 셋째 생각을 옳게 지어 가라. (화두)
1. 자세를 바르게 가지기.
[앉는 자세]
자세를 바르게 하는 방법으로 가부좌 자세를 가진다. 오른 다리를 구부려서 왼쪽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고, 또 왼쪽 다리를 구부려서 오른쪽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습니다.
가부좌하는 것이 참선의 기본 자세입니다. 다리가 굳어서 잘 안 되는 분도 자꾸 해 버릇하면 차츰차츰 굳어져 있던 심줄이 서서히 늘어짐으로 자세를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가부좌를 해야만 참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반가부좌를 해도 좋습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다 올려놓고 하다가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면 발을 바꾸어 놓고 반가부좌를 해도 무방합니다.
다리를 그렇게 한 다음, 오른 손바닥을 위로 해서 왼쪽 발 복숭아뼈 위에다가 올려놓고, 그 다음에 왼손을 펴서 오른손 위에다가 포개 놓은 다음, 양 엄지손가락 끝을 가볍게 맞댑니다.
너무 힘 주어 맞대려고 하지 말고, 또 떨어지지도 않도록 하되 엄지손의 모습이 아주 곱게 되어야 합니다. 위로 삐쭉 올라가거나 삐뚜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그 사람의 생각이 안정이 되었나, 어떤 망상 속에서 곤두박질을 치고 있나, 또는 졸음에 빠져 있느냐, 그런 것을 이 손 모습만 보고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손만 보면은 그 사람이 옳게 화두를 들고 있나, 안 들고 있나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손 모습을 잘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앉은 자세가 뒤로 넘어 가거나, 앞으로 기울어지거나,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두 귀는 어깨 위에, 수직으로 놓이도록 하고 고개도 전후좌우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코끝은 단전 위에 수직선상에 놓이도록 합니다. 몸도 바르게 해야 하고, 고개도 바르게 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금니부터 지긋이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가 대는 것입니다.
눈은 평상으로 뜹니다. 너무 뚝 부릅뜨면은 생각이 산만해지기가 쉽고, 너무 가늘게 뜨면은 졸음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성성하고 적적(惺惺寂寂)하며, 적적하면서 성성(寂寂惺惺)해야 하므로 처음 시작할 때부터 눈을 평상으로 뜨고 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합니다.
눈은 평상으로 뜨되, 자기 앉은자리로부터 3미터 전방에다 시선을 떨구면 되는 것입니다.
‘시선을 떨군다’ 하는 것은 보려고 하면은 거기가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지 어떤 한 점을 의식적으로 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 지점이 보이되 의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본 바가 없어야 합니다.
2. 호흡을 바르게 하기
[단전호흡]
우리의 의식은 오직 배꼽 밑에 일촌 삼푼 (3.3 cm)에다가 집중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집중을 하느냐? 보통 가슴으로 호흡을 하지만, 참선하는 사람은 단전(丹田)으로 호흡하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되 너무 가뜩 들이마시지 말고, 8부쯤만 들이마시되, 숨을 들이마심에 따라 단전 부위가 볼록해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단전이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온 의식이 거기에 집중이 돼야 합니다.
너무 무리하게 잔뜩 들이마신다든지, 들이마신 상태에서 너무 오래 억지로 참는다든지 하면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부작용이 일어나는 수가 있으니까 무리가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단전호흡을 잘하면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회복이 되며 정신이 안정이 되고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단전호흡이 매유 유익한 이유는 첫째 혈액순환을 잘 하도록 도와주게되고, 도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 오장육부에 끼어있는 노폐물, 찌거기 이런 것이 다 밖으로 배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의 피로가 풀리고 몸이 가벼워지고 다라서 정신도 맑아지는 것입니다.
참선하는데 있어서 몸이 건강하고 또 정신이 맑고 그래야 참선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참선을 잘하기 위한 기초 방편으로써 단전호흡을 권장하는 것입니다. 특히 화두를 참구하여 참선하는 경우에 기운이 쉽게 위로 올라가는 상기병(上氣病)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단전호흡은 앉아서 하는 것이 기본 자세이지만 매우 피로했을 때나, 정신이 착잡할 때, 그리고 잠이 안 올 때는 누워서 하는 것도 대단히 효과적입니다.
팔•다리를 뻗고 편안하게 누워서 단전 부위에다가 두툼한 책 한 권을 올려놓습니다.
그래 가지고 숨을 들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니까 책이 약 3센티 가량 위로 올라가고, 올라간 상태에서 약 3초 동안 머무른 뒤 조용히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지니까 따라서 책도 한 3센티 내려오게 됩니다.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마다 ‘하나··· 둘···’하고 세어서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 올라가고, 열에서 하나까지 세어 내려옵니다. 이것이 수식관(數息觀)입니다.
중간에 딴 생각이 나서 몇까지 했나 막연하면 다시 하나에서 시작하고 해서 잘되면 20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또 그게 잘되면 30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합니다.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도록 아무 실수 없이 되면 참선해 나가는데 기초가 아주 훌륭하게 닦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호흡 연습]
<준비 호흡>
호흡을 시작하기 위해 숨을 될 수 있으면 빨리 가뜩 들어마시되, 가슴에 가득차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 해 보세요.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꾹 참고 있다가, 입을 조금 벌리고서 입으로 '후~'허고 다 내뿜어 보세요. 그러면 가슴이 미어질 듯 (숨이) 가득했던 가슴이 인제 더이상 바람이 한 점도 남지 않도록 완전히 다 토해 내는 것입니다.
다 뱉은 다음에 또 스르르르르 허니 또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또 가슴을 약간 들은 듯 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다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또 입으로 후~ 허고 내뿜는 것입니다.
이렇게 2번 내지 3번을 허고 나면 가슴속에 있는 묵은 공기가, 저 가슴속에 구석구석 있던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나가고, 새 공기가 가슴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에 들어가는, 단전호흡에 들어가는 ‘준비 호흡’이라 하는 것입니다.
<본 호흡>
준비 호흡이 3번이 끝났으면 그다음에는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본 호흡은 아까처럼 빨리 그리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잔뜩 들어마시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스르르르르르 허니 코로 들어마셔요.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배꼽 밑에 아랫배, 단전이 볼록해지도록 하면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이 들어마신 공기가 가슴을 통하고 윗배를 통해서 아랫배까지 이렇게 해서 밀어넣는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들어마셔서 아랫배까지 보낼려 해도, 이 가슴까지 밖에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허파가 가슴에만 있고 허파 밑에는 횡경막 가로막이 있어, 그 가로막 밑에까지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는데, 그놈을 억지고 들어마셔 아랫배까지 넣을라고 하면, 이 가슴에 콱 맥혀 처음에 한두 번은 괜찮은데 10번, 20번, 하루, 이틀 하다 보면 나중에는 가슴 눌러보면 아프고 답답하고 뻐근하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내뿜고 그렇게 하기를 3번을 하되,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숨을 들어마셔서 배꼽 밑에까지 내려보내려고 억지로 누르려고 하지 말고, 숨이 내려간다는 과정은 전혀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랫배, 배곱 밑에 단전 부위만 볼록하게 이렇게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또 내쉴 때는 배를 홀쪽하게 만들기만 하면 되어요.
숨은 안 쉬고도 배를 내밀었다 잡아당겼다 할 수가 있으므로, 숨을 들이마심에 따라 맞춰서 배를 볼록하게 하면 되는 것이지, 숨을 꼭 저 밑에까지 밀어 넣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실 대 너무 가득 들이마시지 말고 8부(80%)쯤만 들이 마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너무 가득 들이마시면 그다음에 숨이 가빠지니까 무리가 오게 됩니다.
8부쯤만 들이마시거든 그 8부쯤 들이마신 상태에서 딱 멈춰요. 멈춰서 하나,둘,셋 이렇게 약 3초간 머물렀다가, 조용히 코로 내쉬는 것입니다.
코로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배는 또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준비호흡에서는 입으로 ‘후-’하고 내쉬었지만) 본 호흡에서는 코로 둘이마시고 코로 내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숨이 다 나갔으면 또 스르르 들이마셔. 들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볼록해 지고, 딱 정지 했다가 3초 지난후 또 조용히 내쉬고, 내쉼에 따라서 배는 차츰차츰 홀쭉해지도록 하는 것 뿐입니다.
처음에는 들이마시는데 3초, 딱 멈추는데 3초, 내쉬는데 3~4초 이렇게 한번 들이마셨다가 내쉬는데 약 10초 가량 걸립니다. 사람 체질에 따라 숨이 짧은 사람은 조금 짧게하고, 숨이 평소에 긴 사람은 조금 더 길게 해도 됩니다. 계속 호흡법으로 연습 하다보면 몇 년 후에는 한번 호흡하는데 15초, 30초 걸려서도 하게 됩니다.
단전호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게 하지 말라. 힘들여서 하지 말라. 아주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호흡하라 입니다.
단전호흡으로 가슴이 답답해하는 경우는 숨을 들이마실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 홀쪽하게 하는 방법과 반대로 해보면 답답한 것이 없어집니다. 즉 숨을 들이마실 때 배를 홀쪽하게 만들고, 숨을 내 쉴 때 배를 볼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좌선 시간]
처음에는 다리가 저리고 그렇지만, 이것도 10분 20분씩 차츰차츰 늘려가고 30분씩 늘려가고 또 나중에 1시간이 되면 더이상은 계속해서 앉을려고 말고, 1시간이 되면은 일어서서 포행(布行)을 한다든지 다리를 뻗고 다리를 오그리고 또 발목을 돌리는 그런 운동을 해서 몸을 좀 풀고 한 10분간 그렇게 쉬었다가 다시 또 앉아서 1시간, 이렇게 해서 2시간을 지혜롭게 해 나간다면 아무 부작용은 없이 공부는 나날이 익숙해질 것입니다.
3. 생각을 옳게 지어가라. [화두(話頭) 참선]
그 다음에 가서 생각을 어떻게 다루어 나가느냐? 우리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무엇인가 생각을 아니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이리저리 발전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이 사라지면 또 딴 생각이 생겨나고, 쓸데 있는 생각· 쓸데 없는 생각· 지나간 생각· 현재 닥치고 있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그러한 생각 속에서 일분 일분을 지내고, 하루 하루를 지내고, 그러면서 한평생(一平生)이 지나가게 됩니다. 심지어 잠이 들어 있을때도, 꿈속에서도 그 생각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서 행동화되면 좋은 행동을 하게 되고, 삿(邪)된 생각이나 착(善)하지 못한 생각이 일어나서 그것이 행동화 되면 죄(罪)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의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그 생각이 육도윤회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안 하게(滅) 하려면, 죽으면 안 하게 될 것 같지만 죽는다고 한들 이 현재 가지고 있는 이 몸을 가지고서는 끝나지마는 이 몸 버린다고 해서 그 생각의 활동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은 기멸(起滅)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것만이 생각의 기멸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解脫)하
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란 무엇인가?]
그러면 그 활구참선법이란 어떠한 것이냐?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참선이 아니라,
일체 이론을 배제하고 오직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하나의 화두를 참구하여 일체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하는 참선법입니다.
첫째 자세(姿勢)를 바르게 하고, 둘째 호흡(呼吸)을 바르게 한 다음, 셋째 화두를 의심해 나가는데,
화두(話頭)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話)는 ‘말씀’이란 말이고 두(頭)는 그냥 뜻없는 어조사 또는 ‘단서.실마리’뜻 일 것 입니다.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關門)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이뭣고(是甚麼)”, “판치생모 (板齒生毛)”, “정전백수자 (庭前栢樹子)”, “삼서근(麻三斤)”, “조주 무자(無字)”,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등 1700여 공안이 있습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疑情)입니다 그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觀照)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思量心)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觀照)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이 내 가슴속에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到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지(境地)에 이르면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擧) 있고, 똥을 눌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어, 이렇게 안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寂而常照), 심지어 잠을 잘 때에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에 확철대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 물을 가득 담아놓고 큰 돌로 내려치면 그 항아리가 쩍! 갈라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화두법]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하는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는 '이뭣고?' 라고 합니다. 표준말로 "이것이 무엇인고?" 하고 정확히 쓰면 일곱 자인데, 경상도 말로는 '이뭣고' 석자입니다. 그래서 참선 해나가는 데에는 '이뭣고?'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해 왔습니다.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뿐이어야 합니다.
참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슬플 때는 슬픔에 빠져 가지고, 점점 슬픈 생각이 더 일어나도록 이 생각· 저 생각· 점점 묵은 생각을 일으켜 내 가지고 점점 더 슬픔에 빠집니다.어떤 괴로운 근심 걱정이 있으면 그 근심 걱정을 없앨려고 하지를 않고, 점점 근심이 더 치성하게 일어나도록 근심이 될 만한 사건을 더욱 더 연상을 해내서 더 근심에 빠집니다.
성이 날 때에는 빨리 그 생각을 돌이켜서 성나는 생각이 가라앉도록 해야 자기에게 유익할 텐데, 점점 성이 더 일어나도록 이 생각· 저 생각· 고약한 그 지나간 생각을 되살려 내 가지고 더 깊이 그 성나는 생각에 빠져 들어가서 자기가 자기를 괴롭혀 들어갑니다.
이래 가지고 중생은 불붙은 데다가 스스로 석유와 휘발유를 끼얹어 가지고 점점 더 불을 치성하게 만들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픈 생각이 나도 바로 '이뭣고?', 기분 나쁜 생각이 일어나도 바로 '이뭣고?', 괴로운 생각이 나도 그 괴로운 생각이 다음 두 번째 생각으로 번져나기 이전에 바로 '이뭣고?' 로 돌아와 버리는 것입니다. 도인이라고 해서 생각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되, 그 일어나는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바로 '참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면 그 생각으로 인해서 점점 괴로움에 빠져 들어가서 나중에는 그 한 생각이 원인이 돼 가지고 건강을 상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한테 그 좋지 않은 생각을 터뜨려 가지고 다른 사람 마음까지 괴롭히고 일까지 그르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니 생사윤회에 안 떨어지고 배기겠습니까?
참선은 일어나는 한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번 일어난다 허드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슬픈 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성나는 생각이건, 과거 생각이건 현재 생각이건,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이...뭣고......?" 호흡을 깊이 들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합니다. 무슨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서 성이 푹 솟구치더라도 심호흡을 깊이 들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쪼꼼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
"이... 뭣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 내쉴 때, "이... 뭣고......?" 다 내쉬면 스르르 숨을 들이마시되, 들이마시면서도 아까 그 '이뭣고' 한 그 의심의 그 여운이 그때까지 오도록 그렇게 조용하게 관조를 하는 것입니다.
3초 동안 머무르는 동안에도 그 의심을 묵묵히 관조하다가 조용하게 내쉴 때에 다시 또, "이...뭣고......?" 처음에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하다가 차츰차츰 딴 생각은 줄어들고 '이뭣고 ?' 가 잘 되어지면, 두 번 들이마셨다 내쉴 때 한 번씩만 '이뭣고?'를 들다가, 나중에 더 익숙해지면 다섯 번 호흡하는 동안 '이뭣고?' 한번의 의심으로 쭉 이어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공부가 더욱 익숙해지면 아침에 눈 딱 떴을 때, "이...뭣고......?" 한 번 해놓으면 하루 종일 그 ' 이뭣고?' 한번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될 때가 꼭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안 깨달을래야 안 깨달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이 바로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로써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화두를 들고서 밥도 먹고, 똥도 누고, 차도 타고, 걷기도 하고, 사람하고 대화도 하고,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팔만 사천 마구니(魔軍)가 엿보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팔만 사천 마구니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인데, 화두가 독로(獨露)한 사람한테는 와서 들어 붙지를 못합니다.
잠깐 잠깐 필요 있는 생각이 떠오르면 그 필요한 일을 적절히 처리하되, 나의 이 화두 일념은 근본적으로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요, 우주법계의 주인공이 되어서 우주법계를 내가 요리해 나가고,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운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 법이 바로 불법(佛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팔만대장경에 그렇게 많은 법문이 있지마는 그 말씀을 하나로 뭉치면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 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참선의 효과]
지극히 간단한 이 한 마디지만, 여러분이 이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생활 속에 이것을 응용해 나가고 실천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한 달 못 가서 차츰차츰 이 공부가 얼마만큼 소중하고 훌륭하다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두 달 , 석 달, 반 년, 일 년 가노라면 여러분은 완전히 딴 사람이 돼 있는 것을 느끼게 되고, 여러분 가족이나 친구간에도 "하! 저 사람이 딴 사람이 됐다. 그렇게 신경질을 잘 내고, 경솔하고, 괴벽한 성격을 가졌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저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을까?" 놀랄 정도로 딴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깨달음에 이르게 되면 말할 것도 없지만,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수십 가지 좋은 이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간상 그것을 낱낱이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마는 우선, 피가 맑아지고,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통일이 됩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고, 회사나 관공서에 나가시는 분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끼기 마련인데 아까 말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과 아울러 화두를 잘 관조해 나가면 피로회복이 빨리 되고, 온갖 짜증이 쉽게 풀어지고, 정신이 맑고 안정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환희의 마음으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공부를 알고서 열심히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출처 : 용화선원 “송담스님” 법문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