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정씨(晉陽鄭氏) 공대공(恭戴公)
진주정씨(晋州鄭氏)는 다른 말로 진양정씨(晉陽鄭氏)라고도 한다. 진양이 1995년 진주시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진주정씨(晉州鄭氏)로 명명되고 있다. 진주정씨는 신라 건국 6부족의 하나인 진지부의 지백호(智伯虎)를 원시조로 한다.지백호(智伯虎)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지면서 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후 고려말에 와서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정씨 여덟파가 되어 진주8정(晉州八鄭)이라 한다. 8정(鄭)을 크게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으로 크게 구분하는 것이 통설이다. 이들은 동성동본이면서도 세계를 달리하는 계통으로 이어왔다.
정장(鄭莊)을 시조로 하는 공대공파(恭戴公派)는 4세손인 공대공 정척(鄭陟)을 중흥조로 한다. 시조 정장은 고려 말엽에 통정첨지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를 지냈고, 공대공 정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判尹)을 지냈다. 3세 설(舌)은 성질이 관인(寬仁) 용지(勇知)하여 수장(首長)을 따라 왜구(倭寇)를 물리치고 1392년 임오년(壬午年)에 이씨조선 태조(太祖)가 등극(登極)함에 나아가 예(禮)를 올리니 태조(太祖)로 부터 그 공(功)을 인정받아 서대(犀帶)를 하사(下賜) 받았다. 향년(享年) 78세로 타계(他界) 하여 진주시 신안동 석갑산(石岬山) 건자원(乾字原)에 묘소가 있다. 이묘(墓)는 방형분 구조로 전면 면석에 새겨진 석각으로 피장자의 생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고려말,조선초 진주자역의 묘제 특징을 나타내는 문화재로서 경남 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4세 척(陟)은 태종(太宗)8년 무자 19세에 사마향시(司馬鄕試)에 합격(合格) 갑오(甲午)에 급제(及第)하여 교서관정자(敎書館正字) 에 보선(補選)되고 사헌부(司憲府) 감찰 예조정랑(禮曹正郞)겸 검상관(檢詳官) 공조(工曹) 호조(戶曹) 예조참판(禮曹參判) 한성부윤(漢城府尹)을 거쳐 수문전대제학(修文殿大提學) 을 30여년 간 역임했다. 특히 전고(典故)에 밝아 오예의(五禮儀)를 기초 하고 양성지(梁誠之)와 함께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찬진(撰進) 하였으며 해서와 전서(楷書篆書)가 신묘(神妙)한 경지(境地)에 이르러 세보와 관인(官印)의 글을 새겼다.
성종(成宗)6년에 향년86세로 타계(他界)하여 청백리(淸白吏)로 녹선(錄選)되고 공대공(恭戴公)이란 시호(諡號)를 받고 현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산24번지에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