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평의편(評議篇)
1. 천변만화를 이루어도 본연의 성품은 흔들리지 않는다.
物莫大於天地日月 而子美云 日月籠中鳥 乾坤水上萍,
물막대어천지일월 이자미운 일월롱중조 건곤수상평,
事莫大於揖遜征誅 而康節云 唐虞揖遜三杯酒 湯武征誅一局棋.
사막대어읍손정주 이강절운 당우읍손삼배주 탕무정주일국기.
人能以此胸襟眼界呑吐六合 上下千古,
인능이차흉금안계탄토육합 상하천고,
事來如漚生大海 事去如影滅長空 自經綸萬變而不動一塵矣.
사래여구생대해 사거여영멸장공 자경륜만변이불동일진의.
사물로는 천지일월보다 큰 것은 없으나 두보는 ‘해와 달은 새장 속의 새와 같고, 하늘과 땅은 물에 뜬 부평초와 같다’고 했다. 인간의 일로는 나라를 선양하고 정복하는 것만큼 큰 일이 없으나 소강절은 ‘요임금과 순임금은 석 잔의 술을 사양하듯 나라를 선양했고, 탕임금과 무왕은 한 판의 바둑 두듯이 정벌했다’고 하였다. 이처럼 사람은 그 흉금과 안목으로 능히 우주를 삼켰다 토했다 하고 천년의 시간을 오르내린다.
어떤 일이 닥쳐올 때에는 바다에 거품이 생기는 것과 같고, 일이 지나갈 때에는 그림자가 허공에 사라지는 것과 같아, 스스로 천변만화를 이루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게 한다.
-. 子美 : 두보(杜甫, 당. 712-770)의 자, 康節 : 소강절(邵康節. 宋. 1011~1077),
揖 : 읍할 읍.모을 집.모을 즙.揖遜 (읍손.읍揖하는 예禮를 갖추면서 자기를 낮춤. 겸손謙遜함), 誅: 벨 주, 六合: 천지와 사방
2. 외부환경에 따라 변해서는 안된다.
持身涉世 不可隨境而遷
지신섭세 불가수경이천
須是大火流金 而淸風穆然 嚴霜殺物 而和氣藹然
수시대화유금 이청풍목연 엄상살물 이화기애연
陰霾翳空 而慧日郞然 洪濤倒海 而砥柱屹然
음매예공 이혜일랑연 홍도도해 이지주흘연
方是宇宙的眞人品.
방시우주적진인품.
세상을 바르게 처신하며 살아나가려면 수시로 외부환경에 따라 변해서는 안 된다.
뜨거운 불이 무쇠를 녹일지라도 맑은 바람처럼 의연해야 하며
매서운 서리가 온 만물을 시들게 하여도 부드러운 바람처럼 온화해야 하며
하늘이 흐려지고 폭우가 내리쳐도 항상 해가 밝게 비치는 것과 같이 해야 하며
거센 파도가 바다를 뒤엎더라도 지주처럼 우뚝 솟아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우주의 진실한 인품이라 할 수 있다.
-.穆 : 화목할 목, 藹 : 우거질 애. 윤택할 애, 霾 : 흙비 매, 翳 : 일산 예, 屹 : 우뚝솟을 홀
3. 인격을 형성함에 속세를 바로 잡으려 해서는 안된다.
作人要脫俗 不可存一矯俗之心, 應世要隨時 不可起一趨時之念.
작인요탈속 불가존일교속지심, 응세요수시 불가기일추시지념.
인격을 형성하려면 세속을 벗어날 필요가 있지만 한 가닥이라도 세속을 고치려 해서는 안 된다.
일을 처리함에는 시대의 흐름에 맞출 필요가 있지만 한 가닥이라도 시류를 추종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 矯俗 : 풍속을 바로잡음, 趨時 : 세태를 따라감.
4. 비방과 속임의 피해도 인격 수양의 기회로 삼아라.
毁人者不美 而受人毁者遭一番訕謗 便加一番修省 可以釋惡 而增美,
훼인자불미 이수인훼자조일번산방 편가일번수성 가이석악 이증미
欺人者非福 而受人欺者遇一番橫逆 使長一番器宇 可以轉禍 而爲福.
기인자비복 이수인기자우일번횡역 사장일번기우 가이전화 이위복.
남을 비방하는 사람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나 비방을 받는 사람은 한 번 비방을 받을 때마다 자기를 성찰하여 나쁜점을 버리고 좋은점을 키우게 된다.
남을 속이는 사람은 복 받을 수 없겠지만, 속임을 당하는 사람은 속을 때마다 도량을 키워 전화위복이 되게 한다.
- 遭 : 만날 조, 訕謗 : 헐뜯을 산, 비방할 방
- 釋 : 풀 석. 기뻐할 역, 解釋, 釋放,釋迦
- 器宇 : 타고난 기품이나 재능, 器量(기량)
5. 하늘이 복을 내릴때 기뻐만 할 것이 아니고, 화가 닥쳤을때도 근심만 할 것이 아니다.
天欲禍人 必先以微福驕之 所以福來 不必喜 要看他會受
천욕화인 필선이미복교지 소이복래 불필희 요간타회수
天欲福人 必先以徵禍儆之 所以禍來 不必憂 要看他會救.
천욕복인 필선이미화경지 소이화재 불필우 요간타회구
하늘이 사람에게 화를 내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조그만 복을 주어 그 마음이 교만해지게 한다.
그러니 복이 오더라도 마냥 기뻐하지 말고 그 것을 받을 만 한가를 헤아려야 한다.
또 하늘이 사람에게 복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가벼운 화를 주어 그 마음을 경계하여 정신을 차리게 한다.
그러므로 재앙이 오더라도 너무 근심하지 말고 그 재앙에서 구제 되는 것을 살펴야 한다.
- 儆 : 경계할 경, 警
6. 한결같이 진실하고 솔직해야 한다
作人 只是一味率眞 蹤跡雖隱還顯,
작인 지시일미솔진 종적수은환현
存心 若有牛毫未淨 事爲雖公亦私.
존심 약유반호미정 사위수공역사.
사람이 한결같이 진솔하면 일부러 그 종적을 숨긴다 해도 오히려 드러나는 법이다.
그 마음에 만약 조금이라도 불순한 것이 있으면, 비록 공공(公共)의 일이라 하더라도 또한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진다.
7. 가난하고 미천한 이가 허풍을 떤다.
貧賤驕人 雖涉虛憍 還有幾分俠氣
빈천교인 수섭허교 환유기분협기
英雄欺世 縱似揮霍 全沒半點眞心
간웅기세 종사휘곽 전몰반점진심
빈천한 처지에서 남에게 교만한 것은 비록 허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협기가 있으나,
영웅이 세상을 속이면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지만 조금도 진심은 없는 것이다.
- 縱:세로종. 바쁠 총, 揮: 휘두를 휘. 표기휘, 霍:빠를 곽. 고을이름 사.
8. 이치를 깨닫고자 하면 먼저 그 정취를 알아야 한다.
琴書詩畵 達士以之養性靈 而庸夫徒賞其跡像
금서시화 달사이지양성령 이용부도상기적상
山川雲物 高人以之助學識 而俗子徒玩其光華
산천운물 고인이지조학식 이속자도완기광화
可見事物無定品 隋人識見 以爲高下
가견사물무정품 수인식견 이위고하
故讀書窮理 要以識趣爲先.
고독서궁리 요이식취위선.
달인은 거문고.책.시.그림으로 성령을 기르지만 보통사람은 그 형상만을 즐긴다.
인품이 높은 사람은 산천,구름.자연은 학식을 넓히지만 속인은 그 경치 구경만 한다.
사물에는 정해진 품과 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식견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고 볼수 있다.
글을 읽고 이치를 깨닫고자 한다면 먼저 그 아름다움과 멋(趣)을 알아야 한다.
- 跡像: 발자취 적, 모양 상, 趣 : 뜻 취.멋 취.재촉할 촉. 벼슬이름 추, 趣旨. 情趣
9. 감정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少壯者 當事事用意 而意反輕
소장자 당사사용의 이의반경
徒汎汎作水中鳧而已 何以振雲霄之翮
도범범작수중부이이 하이진운소지핵
衰老者 事事宜忘情 而情反重
쇠로자 사사의망정 이정반중
徒碌碌爲轅下駒而已 何以脫韁鎖之身.
도녹록위원하구이이 하이탈강쇄지신.
젊은이는 매사에 의지력을 가지고 임해야 하나 도리어 의지가 약해
한갓 물 위에 뜬 물오리 같이 가벼우니, 어찌 창공을 향해 나래를 활짝 펼 수 있을까.
늙은이는 매사 감정에 매이지 말아야 하나 도리어 감정에 얽매여
수레 끌채에 묶인 말처럼 이러지 저러지도 못하니 어떻게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 鳧 : 물오리 부, 雲霄 : 높은 하늘, 翮 : 깃촉 핵, 솥 력, 碌碌: 하잘것 없는 돌, 韁: 고삐 강, 鎖: 쇠사슬 쇄
10.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언제나 없는 것 같고 비어 있는 것같고, 덕이 높아도 자랑하지 않는다.
鶴立鷄群 可謂超然無侶矣 然進而觀於大海之鵬 則渺然自小
학립계군 가위초연무려의 연진이관어대해지붕 즉묘연자소
又進而求之九霄之鳳 則巍乎莫及 所以至人常若無若虛 而盛德多不矜不伐也.
우진이구지구소지봉 즉외호막급 소이지인상약무약허 이성덕다불긍불벌야.
학이 닭 무리와 같이 있으면 뛰어나겠지만 큰 바다위를 나는 대붕과 비교해 보면 아주 볼품이 없다.
더 나아가 높은 하늘을 나는 봉황은 너무 높아서 따라갈 수 없듯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언제나 없음과 같고, 비어있음과 같으며 덕이 높아도 자랑하지 않는다.
11. 복과 화는 그 원인이 있다.
蛾撲火 火焦蛾 莫謂禍生無本
아박화 화초아 막위화생무본
果種花 花結果 須知福至有因
과종화 화결과 수지복지유인
나방이 불에 뛰어들면 불이 나방을 태우니, 화가 미치는 데 원인이 없다하지 말라.
씨를 심으면 꽃이피고 꽃에서 다시 열매가 맺으니, 복이 오는데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蛾 : 나방 아
12. 한결같은 우주의 오묘한 작용
秋蟲春鳥 共暢天機 何必浪生悲喜
추충춘조 공창천기 하필낭생비희
老樹新花 同含生意 胡爲妄別媸姸
노수신화 동함생의 호위망별치연
가을벌레.봄새 모두 한결같이 천기가 통하는 것인데 어찌 하릴없이 슬프고 기쁘다 하겠는가.
고목이든 새로 피어난 꽃역시 한결같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것인데 어찌 흉하다.예브다 구멸 짓겠는가.
- 暢 화창할 창. 통할 창, 媸 추할 치, 姸 고울 연
13. 만물의 원리는 하나이다.
萬境一轍 原無地著個窮通
만경일철 원무지착개궁통
萬物一體 原無處分個彼我
만물일체 원무처분개피아
世人迷真逐妄 乃向坦途上 自設一坷坎
세인미진축망 내향탄도상 자설일가감
從空洞中 自築一藩籬 良足慨哉
종공동중 자축일번리 양족개재
세상 모든 일은 하나의 바퀴 자국(같은이치)으로, 원래부터 막히고 통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일체가 되어, 원래 너와 내가 나뉘어 있던 것이 아니다.
사람이 참을 잊고 거짓을 좇으니 평탄한 길에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빈 굴에 들어가 스스로 울타리 치나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 轍 : 바퀴자국 철, 著 : 나타날 저. 굳을 착, 坦 : 평탄할 탄, 坷 : 험할 가, 坎 : 구덩이 감
- 藩籬 : 울타리 번, 울타리 리
14. 좋은 징조와 복은 너그럽고 후한 가정에 모인다.
大烈鴻猷 常出悠閑鎭定之士 不必忙忙
대열홍유 상출유한진정지사 불필망망.
休徵景福 多集寬洪長厚之家 何須瑣瑣.
휴징경복 다집관홍장후지가 하수쇄쇄.
큰 공과 원대한 계획은 항상 여유롭고 침착한 사람에게서 나오므로
조급하게 굴 필요가 없다.
상서로운 징조와 큰 복은 대부분 너그럽고 인심이 후한 집으로 모이니
각박하게 굴 필요가 없다.
- 鴻猷 : 기러기 홍, 꾀유. 큰 계획, 悠 : 멀유, 瑣 : 자질구레할 쇄
15. 시끄러운 곳에서도 도를 배운다.
貧士肯濟人 纔是性天中惠澤
빈사긍제인 재시성천중혜택
鬧場能學道 方爲心地上工夫
요장능학도 방위심지상공부
가난한 선비가 즐거이 남을 돕는다면 그것은 본연의 심성에서 우러나온 베품이다.
시끄러운 곳에서 도를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마음 바탕에서 이뤄지는 공부다.
- 鬧:시끄러울 요
16. 생각이 담담하고 욕심이 없으면 귀신도 나를 부리지 못한다.
人生只爲欲字所累 便如馬如牛 聽人羈絡 爲鷹爲犬 任物鞭笞.
인생지위욕자소루 편여마여우 청인기락 위응위견 임물편태.
若果一念淸明 淡然無欲 天地也不能轉動我
약과일념청명 담연무욕 천지야불능전동아
鬼神也不能役使我 況一切區區事物乎
귀신야불능역사아 황일체구구사물호.
인생이 단지 욕망에 얽매이게 되면, 소나 말처럼 사람의 고삐에 얽매여야 하고, 매나 사냥개처럼 채찍을 맞으며 살게된다.
만약 생각이 청명하고 담박하여 욕심이 없다면, 천지도 나를 움직일 수 없고,
귀신도 나를 부리지 못할 것이니, 하물며 모든 사소한 사물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 便: 편할 편 , 羈: 굴레 기, 絡: 이을 락. 얽을 락, 鞭:채찍 편, 笞: 볼기칠 태
17. 군자는 역경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衆人以順境爲樂 而君子樂自逆境中來
중인이순경위락 이군자락자역경중래
衆人以佛意爲憂 而君子憂從快意處起
중인이불의위우 이군자우종쾌의처기
蓋衆人憂樂以情 而君子憂樂以理也
개중인우락이정 이군자우락이리야.
평범한 사람은 순탄한 환경에서 즐거워 하고, 군자는 역경 속에서 즐거움을 누린다.
평범한 사람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근심하고, 군자는 뜻대로 잘 되는 곳에서 근심을 찾는다.
대체로 평범한 사람의 근심과 즐거움은 감정에 따르고, 군자의 근심과 즐거움은 이치에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