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왜 까치 설이라 했을까. 찾아보고 생각 해 본다.
1. 까치는 텃세가 강해 자기영역에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의 표시로 열심히 반응한다. 설을 맞아 낯선 친지들이 집을 방문하니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2. 음력 섣달 그믐을 작은설이라 했는데, '아치'는 '작은(小)' 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아치설의 '아치' 음이 변해 '까치'로 바뀌었다 한다. [비슷한 예로 서해안에는 음력 22일 조금을 '아치조금'이라 하고, 일부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 한다.]
3. 까치설날 설화
삼국유사에는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작당하여 왕을 해치려 했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의 도움으로 이를 모면하였다.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十二支)에 드는 동물이라 그 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 이라 했다. 이 새는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었다고도 한다.
4. 작은 설. 까마귀 설.
이 동요가 만들어진 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1924년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양력 1월 1일 '신정'을 설날로 쇠었다. 우리 민족의 설날인 음력 1월1일보다 앞선 시점이기 때문에 '까치 설날은 어저께' 즉 '작은 사람(왜놈) 설날은 어저께'로 해석 해 볼 수도 있다. 또는 일본인들은 까치 대신 까마귀를 길조로 여기므로 '까마귀 설날은 어저께'라고 했다가, 밝고 명랑한 동요 가사에 맞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길조로 여기는 까치(까마귀가 아닌)로 작사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작사.작곡하신 윤극영 선생에게 물어 볼 수 없으니 알 수는 없다.
왜 까치 설이라 했을까. 찾아보고 생각 해 본다.
1. 까치는 텃세가 강해 자기영역에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의 표시로 열심히 반응한다. 설을 맞아 낯선 친지들이 집을 방문하니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2. 음력 섣달 그믐을 작은설이라 했는데, '아치'는 '작은(小)' 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아치설의 '아치' 음이 변해 '까치'로 바뀌었다 한다. [비슷한 예로 서해안에는 음력 22일 조금을 '아치조금'이라 하고, 일부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 한다.]
3. 까치설날 설화
삼국유사에는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작당하여 왕을 해치려 했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의 도움으로 이를 모면하였다.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十二支)에 드는 동물이라 그 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 이라 했다. 이 새는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었다고도 한다.
4. 작은 설. 까마귀 설.
이 동요가 만들어진 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1924년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양력 1월 1일 '신정'을 설날로 쇠었다. 우리 민족의 설날인 음력 1월1일보다 앞선 시점이기 때문에 '까치 설날은 어저께' 즉 '작은 사람(왜놈) 설날은 어저께'로 해석 해 볼 수도 있다. 또는 일본인들은 까치 대신 까마귀를 길조로 여기므로 '까마귀 설날은 어저께'라고 했다가, 밝고 명랑한 동요 가사에 맞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길조로 여기는 까치(까마귀가 아닌)로 작사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작사.작곡하신 윤극영 선생에게 물어 볼 수 없으니 알 수는 없다.
'우리말 어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면 정든다" - 산청 남사마을 주변 이름 유래 (2) | 2023.01.29 |
---|---|
마니산 참성단 (塹星壇) (0) | 2022.10.02 |
누이, 누에, 잠 어원 (0) | 2021.12.17 |
배곧.고잔동 어원 (0) | 2021.09.05 |
봄 바람 (0) | 2021.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