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不遠人(도불원인)

정운종의 고전공부

사락정(四樂亭) 7

파리장서 원문_해석

[韓國儒林送巴里平和會書] 한국유림송파리평화회의서 한국의 유림대표 곽종석 김복한 등 137인은 삼가 파리평화회의 각 대표자분들께 글을 드립니다. 하늘과 땅 사이 모든 것이 함께 생기고 성장하며 살고 있으니 이렇게 우리는 햇볕을 같이 쬐고 변하고 성장하는 혜택을 함께 누리는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빼앗는데서 강하고 약함이 나누어지고 빼앗아 합치는 권한을 함부로 하여, 크고 작음의 차이가 생기면서부터, 남의 생명을 해쳐 그 위세를 부리고 남의 나라를 훔쳐 가로채는 경우가 아! 천하에 어찌 이리도 허다합니까? 이것이 바로 하늘이 각국 대표 분들로 하여금 천지의 바른 기운을 받들어 햇볕처럼 밝히게 하고 가르쳐 변화를 행하게 하여 천하를 하나로 묶어 크게 서로 하나 되는 세계로 돌아가게 하며, 만물..

곽면우선생 연보 (郭俛宇先生 年譜)

성명 : 곽종석(郭鍾錫) 생년 : 1846년(헌종 12) 6월 24일 ~ 1919년 8월 24일 자 : 명원(鳴遠), 연길(淵吉) 호 : 면우(俛宇), 유석(幼石) 본관 : 현풍(玄風) 개명 : 도(鋾) 특기사항 : 이진상(李震相)의 문인. 허유(許愈), 이종기(李種杞), 이승희(李承熙) 등과 교 행력 왕력 서기 간지 연호 연령 기사 헌종 12 1846 병오 道光 26 1 6월 24일, 丹城縣 沙月里 草浦村 寓舍에서 태어나다. 헌종 13 1847 정미 道光 27 2 부친을 따라 道坪으로 이사하다. 철종 1 1850 경술 道光 30 5 「十九史略」을 읽다. 철종 2 1851 신해 咸豐 1 6 四書와 「詩經」을 읽다. 철종 3 1852 임자 咸豐 2 7 「書經」을 읽다. 철종 8 1857 정사 咸豐 7 12..

면우선생문집(俛宇先生文集) 구성과 내용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편찬및간행 저자는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寒洲 李震相의 문인으로서 心卽理說을 계승하여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1919년에는 「巴里長書事件」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저자는 생전에 著述의 일부를 정리해 두었다. 저자의 조카 郭奫이 1920년 金思鎭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중년 이전의 글은 저자가 손수 刪定하여 정리를 마쳤는데, 詩稿가 8책, 疏箚가 3책, 書札이 33책, 記ㆍ狀ㆍ碣ㆍ雜著가 15책으로서 모두 59책이었다고 한다. 1919년 8월 저자가 졸하자 門人들은 개별적으로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던 자자의 유문을 수습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2월에는 郭奫의 주도하에 본격적인 유문의 정리가 시작되었다. 기존의 手稿本 59책과 ..

공대공파(恭戴公派) - 장령공(掌令公) 계도

• 진주정씨(晋州鄭氏) 공대공파(恭戴公派) - 장령공(掌令公)계 진주정씨(晋州鄭氏) 또는 진양정씨(晋陽鄭氏)는 이른바 진주팔정(晋州八鄭)이 있는데 공대공파(恭戴公派)도 그 하나이다. 시조(始祖) 휘 장(莊)은 고려 말기에 통정첨지 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를 역임하였으며, 그의 증손 척(陟)은 조선왕조 초기 태종대 이후 6대 왕에 걸쳐 벼슬한 진주정씨 장계(莊系)의 중흥조(中興祖)이다. 척(陟)은 3세 설(舌)의 아들로서 자(字)는 명지(名之)요, 호(號)는 정암(整菴)인데 시호(諡號)는 공대공(恭戴公)이다. 어려서 총명하였으며 19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 많은 벼슬을 거쳐 경창부윤(慶昌府尹)에 등용됐다. 1449년(세종 31)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후 1454년(단종 2) 판한성부사(判漢城..

四樂亭(사락정)

四樂亭(사락정)은 진양정씨 (晋陽 鄭氏) 공대공파(恭戴公派) 6세손인 운(夽)의 호이다. 四樂亭(사락정) 운(夽)은 공대공파 중흥조 공대공 정척(鄭陟)의 손자로 조선 중종때 거제부사를 끝으로 벼슬길에 물러나 진주비봉산아래에서 安貧樂道의 삶을 살았다. 8세손인 운(夽)의 손자인 종원(宗元 : 8세)과 현령(玄齡)이 사천(入泗川)으로 들어와 터를 닦았다. 그 후손들은 밭두(斗良)에 四樂亭을 지어 선조를 기리고 매년 가을에 시사를 지내고 있다. 四樂(사락)은 농사짓고, 누에치고, 고기잡고, 나무하는 農桑漁樵(농상어초)의 네가지를 즐긴다는 뜻이 있으며, 운(夽)공은 거제부사를 사직하고 진주로 낙향하여 농사짓고, 고기잡으며, 어버이를 공양하고, 자손을 가르치는 네가지 즐거움을 四樂(사락)이라 일 컫어 四樂亭(사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