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량문(上梁文)>
우리 전통문화에서 집을 지을 때 행하는 의식인 상량식이 있다. 집은 삶의 근거지이고 많은 돈과 노력이 드는 것이므로 혼례식, 장례식 등과 함께 그 의식은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다. 공사를 하기 위해 터를 닦기 시작할 때 산천과 사당에 고하는 ‘고유제’를 지내고 집의 골조를 완성하였을 때는 ‘상량식’을 거행한다.
상량은 건물 골격이 완성되는 들보(종도리)를 올리는 과정으로 가신(家神)인 성주가 탄생하는 순간이며, 건축 과정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들보를 올리며 상량식을 거행할 때, 상서로운 기운과 경사, 그리고 신령에 대한 경의를 담은 표현을 상량문에 담았다. 그 상량문은 종이나 비단 같은 천에 적어, 종도리나 종도리를 받치는 부재인 장여에 홈을 파고 넣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오래된 건축물에는 상량문이 남아있고 전해져왔다.
그 상량문에 대해 알아본다.
상량문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서두에 그 집을 짓게 된 연유와 집주인의 인품, 공사 참여자, 상량 일시 등을 적는다. 다음은 동, 서, 남, 북, 상, 하 여섯 방향에 따라 축시(祝詩) 여섯 수를 짓는다. 이어 상량 후 좋은 일이 이 집을 통해 많이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글귀로 마무리한다.
서문에 이어지는 축시는 맨 먼저 ‘아랑위포량동(兒郞偉抛樑東)’이란 정형화된 문구로 시작한다. ‘아랑위포량동’ 이어 동, 서, 남, 북, 상, 하 여섯 수의 축시가 이어진다.
{현종 8년(1667), 종묘 영녕전 개수(改修)된 상량문의 축시를 보면,
“아랑위포량동(兒郞偉抛樑東) / 맑은 봄날 낙산에 아침 햇살 붉구나 / 모든 영령이 수놓은 문, 길이 보호하니 / 만년(萬年)토록 좋은 기운 성대히 머무르리라”
“아랑위포량서(西) / 금원에 서리와 이슬 내려 밤이 서늘하네 / 제관이 제사 지내려고 벽돌 사당 길 가니 / 악기에 맞추어 일제히 일무를 추네”
“아랑위포량남(南) / 전각에 부는 훈풍 나무들이 머금네 / 맑은 그늘 펼쳐 온 나라에 나누어 주고 / 당시 남기신 교화 지금까지 이르렀지”
“아랑위포량북(北) / 별들이 흩어져 북극성 둘러싸네 / 변함없이 남쪽을 바라보는 군왕의 병풍 / 천년(千年)토록 사당을 공경히 우러러보리라”
“아랑위포량상(上) / 상서로운 구름 아득히 의장(儀仗)을 가리네 / 참된 저세상 제향이 멀다 마라 / 뵙는 듯 지극정성에 신령이 흠향하리라”
“아랑위포량하(下) / 도성의 연무가 수많은 기와를 감쌌구나 / 성은으로 물산이 풍부하고 백성이 평안하니 / 환호와 기쁜 기색은 조야가 모두 같네!”
여기서 ‘아랑위’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어영차’의 의성어라는 설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던질 포, 들보 량, 동녘 동과 어우러져 ‘어영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라고 해석한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이 고사에 따르면, 육조시대 이래 건축물의 골격이 완성된 뒤에 길일을 잡아 들보를 올리며 상량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음식을 싸 와서 축하하고 목수를 대접한다. 그러면, 목수의 우두머리인 도목수가 들보 위에 걸터앉아 만두와 떡 등 제물을 사방과 위아래로 던지며 상량문을 읽는다. 이때는 ‘아랑위’는 의성어가 아니라 젊은이를 일컫는 ‘아랑’의 복수형으로 도목수가 장인들을 부를 때 통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아랑위포량동’은 ‘여보게, 들보 동쪽으로 떡을 던지세’의 뜻이 된다.
또, 아랑위포량동, 서, 남, 북, 상, 하로 이어지는 시구에는 각 방향에 해당하는 사물을 노래한다. ‘낙산’은 영녕전의 동쪽에 있고, ‘금원’은 궁궐의 후원으로 서쪽에, ‘나무들’은 남쪽에, ‘북극성’은 북쪽에, ‘구름’은 위에, ‘도성’은 임금이 다스리는 아래에 있다.
축시 뒤에는 ‘복원상량지후(伏願上梁之後: 삼가 바라옵건대 상량 후에는)’라는 말을 시작으로 기원하는 문구로 끝을 맺는다. 영녕전 상량문에는 “삼가 바라옵건대 상량한 후에는 국운이 장구하고 하늘의 아름다움이 더욱 이르리라. 효손에 경사가 생기리니 만년 장수하길 돕고 선왕을 잊을 수 없으니, 멀고 오랜 세월 동안 혈식(血食: 종묘 제사 때 쓰는 생고기, 즉 희생)을 받으리라”라고 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글 발췌)
일반적으로 큰 집이 아닌 경우에는 짧은 문장의 상량문을 종도리 바닥에 종서(縱書)로 쓴다. 종도리 아래에 부재인 장여가 있으면 장여에 가려 글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장여 바닥이나 종도리․장여 측면에 쓰기도 한다. 순서는 집의 중심인 안방 쪽에서 시작해 건넌방 쪽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재액방지 문자로는 용(龍)과 거북(龜)이 가장 많이 쓰이고, 호랑이(虎), 봉(鳳), 기린(麒麟)도 쓰인다. 용은 용용용(龍龍龍), 용반(龍盤), 해룡(海龍), 활룡해룡(活龍 海龍), 구룡(龜龍)으로 적기도 한다. ‘구(龜)’도 구구구(龜龜龜), 낙구(洛龜), 수구(水龜), 산구(山龜), 하구(河龜)로 적기도 한다. 때로 상형문자나 그림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상량문에 ‘용’과 ‘거북’을 적는 이유는 용과 거북이 물의 신(水神)이므로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물이 아닌 해(海), 수(水), 하(河), 묘(淼) 등의 문자도 화재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쓰인다. 거북은 수신으로서 화재 방지의 의미가 있지만 장수 동물이나 길상 동물로도 인식된다. 호랑이는 벽사(辟邪)의 의미, 기린(麒麟)․봉(鳳)은 길상 동물을 의미한다.
상량문에는 종도리를 올린 시간인 상량시(上樑時)인 년,월,일,시를 적는다. 건물이 마치 사람의 탄생처럼 탄생일인 사주(四柱)가 정해진다는 의미이다.
연도는 ‘광무칠년갑진(光武七年甲辰)’처럼 연도와 간지를 표기한 방식이 일반적이다. ‘세재(歲在)’ 또는 ‘태세(太歲)’라고 적고 간지 또는 연도를 적기도 하며, 청나라 연호인 ‘동치(同治)’, ‘광서(光緖)’, ‘함풍(咸豐)’, ‘가경(嘉慶)’과 명나라 연호인 ‘숭정(崇禎)’을 적는다. 대한제국기에 지어진 민가 상량문에는 ‘광무(光武)’ 또는 단기(檀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원과 같은 유교 건물인 경우 공부자탄강(孔夫子誕降), 사찰 건물은 불기(佛紀)나 세존응화(世尊應化)로 각각 쓰는 등 건물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최근에 지어진 가옥은 서기(西紀)를 많이 사용한다. ‘시(時)’를 적을 때 고자(古字)인 ‘시(峕)’를 사용하기도 한다.
상량문에 ‘자좌오향(子坐午向)’처럼 건물의 좌와 향을 적기도 하고, 가주(가주)의 이름이나 생년을 적기도 한다.
짧은 기원문(祈願文)을 적는데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이 가장 많이 쓰인다. ‘하늘의 삼광(三光)인 해․달․별은 감응하시어 인간의 오복을 내려주소서.’라는 뜻이다. 이 밖에 부귀영화 자손창성(富貴榮華子孫昌盛), 부모천년수 자손만세영(父母千年壽子孫萬世榮)도 가끔 쓰인다. 쓰는 방식은 기원문의 글자가 많아서 대개 두 줄로 쓰며, 다른 글자보다 작은 글씨로 쓴다. 이 밖에 목수의 이름을 적기도 하고 오행(五行)을 적기도 한다.
전통 건축물의 마지막 공정에 해당하는 상량식에서 상량은 단순히 건축물의 완성을 알리는 의식을 넘어서, 그 건축물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건축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노고를 기리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건축물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기운을 불러일으키기를 기원하는 전통이다. 상량문은 건축물의 목적, 설립 연도,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 등은 후대에 그 건축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우리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현대에는 전통 의식과 절차가 없어지고 또 달라진다. 성인식, 혼례식, 장례식 등의 중요한 의식도 전통과 많이 변하고 있다. 시대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 또한 없는 것이 상식이다. 옛 것을 알고 창의적으로 변화 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정신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도 적용 가능하며 오늘날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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