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不遠人(도불원인)

정운종의 고전공부

향교(鄕校) 서원(書院)

단성향교(丹城鄉校) 중수기문(重修記文) 2 - 명륜당 상량문

도원 정운종 2025. 12. 7. 16:19

2) 明倫堂上樑文 (명륜당 상량문)

屈於時而屈於力幾歎闕典之未行 有是校則有是堂聿覩新構之載煥 儒林動色自夫聖廟之肇開行路改觀即有講堂之隨關 明倫扁額三綱五常之攸原 賢士所關夏禮冬詩之斯講 是以列郡處處無非廈屋舉顧玆十室雷封獨欠數椽黌舍生徒無講肄之所 絃誦寥寥士林絶依歸之所方風敎貿貿謀始設刱豈無意於從前功鉅力微尚未遑於

(굴어시이굴어력기탄궐전지말행유시교즉유시당율도신구지재환유림동색자부 성묘지조개행로개관즉유강당지수관명륜편액삼강오상지유원현사소관하례동시지사강시이열군처처무비하실거고자십실뇌봉독흠수연횡사생도무강이지소현송요요사림절의귀지소방풍교무무모시설창기무의어종전공거력미상미황어)

시세가 어렵고 힘이 모자라 명륜당을 건립하지 못함은 몇 번인가 탄식했다. 이에 학교가 있고, 이에 당을 갖췄으니 새로 지은 건물의 찬란함을 보겠다. 유림이 반가워 함은 성묘를 처음세웠기 때문이요, 행인들이 쳐다보는 것은 강당을 아울러 수리했기 때문이다.

명륜당(明倫堂) 편액(扁額)은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의 근본이고 현사(賢士)들의 소임(所任)은 동하(冬夏)로 시례(詩禮)를 강론(講論)함일세. 이런 까닭으로 여러 고을 곳곳에 큰 건물이 우뚝하지 않음이 없다네. 돌아보건대 이곳 10()의 작은 고을에는 유독 서까래 몇 개의 학교 마저 없었다. 생도들은 공부할 장소가 없어 현송(絃誦)소리 적막했고, 사림은 의귀할 자리가 끊겨 풍교가 무너졌다. 명륜당 창건할 계획에 어찌 종전부터 뜻이 없었겠는가. 일은 크고 힘이 모자라 지금까지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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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有識之咨嘆盖久多士之慨恨無窮自先輩所未就者在後生孰不慨然

幸今賢侯之荏邦聚青衿於北海志銳作成慕古令宰之興學下緇於帷西河首先勸課纔下車而拜聖歎有廟而無堂招諸生而諄諄爰諮爰訪召匠手而屹屹乃紀乃營不可一日而無何論豊瘠出捐數月之俸亟加措施開基於四會之躔菫役於三農之隙神輸鬼運木石具於斯須日吉辰良棟梁儼而高屹三門四表遵舊制於周庠複壁重欄倣美規於魯泮 苟合矣苟完矣 不侈不華美輪焉美奐焉如翬如跂居然作新風采孰不聳動觀膽

이에 유식한 이들의 탄식이 오래되었고, 많은 선비들의 한스러움이 무궁하였다.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사업에 후생(後生)들 그 누가 안타까워 아니하랴. 다행히도 지금의 어진 원님이 부임하더니 한()나라 북해상(北海相)인 공융(孔融)처럼 학생들을 모아 학문 성취에 뜻을 북돋았고, 옛날 홀륭한 수령의 홍학(興學)한 일을 홈모하더니 춘추시대 서하교수(西河教授)를 지 낸 자하(子夏)처럼 강석을 마련하여 제일 먼저 공부를 권장했다. 이에 수레에서 내리자마자 대성(大聖)을 배알하고, 사당은 있으나 명륜당이 없음을 탄식했다. 재상들을 초청하여 순순히 자문하여 상의했고, 장인들을 불러서 부지런히 설계하고 경영했다. 하루라도 없을 수가 없으니 어찌 넉넉 하고 모자람을 따지겠는가. 수 개월의 녹봉(祿俸)을 출연(出捐)하여 서둘러 조치하고 시행했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모이는 날에 터를 닦아서 세 철 농사의 여가로 공사를 다스렸다. 신출귀몰하게 운반하니 목석(木石)들이 순식간에 구비되 었고, 날이 좋고 때가 맞으니 동량(棟梁)이 우뚝 높이 솟았다. 삼문(三門) 과 사표(四表)는 주()나라 학교처럼 옛 제도를 따랐고, 복벽(複壁)과 중란(重欄)은 노()나라 반궁(半宮)처럼 좋은 규모를 모방했다. 규모를 알맞게 완비하니 사치(奢侈)스럽거나 화려(華麗)하지 아니하고 밝고 빛내게 꾸 몄으니 날아갈듯 산뜻하다. 문득 풍채를 새롭게 드러내니 누구인들 기쁘게 쳐다보지 아니하랴.

 

惟嶺南七十州何所不有自我東三百載今賀新成周旋後前雖緣章甫之糾合鼓動感發實 由太守之作興翠壁丹崖環擁左右蒼松綠竹羅列庭除聳

尼丘之重巒怳疑鄒魯之境 睠新安之一帶遙接濂洛源

영남 70고을에 어디인들 없겠는가마는 우리 나라 300년 만에 이제야 신축함을 하례한다. 전후로 주선함은 비록 선비들의 규합에 의한 것이지만 감발(感發)하여 분기함은 실로 태수의 선도를 말미암았다. 취벽(翠壁)과 단애(丹崖)는 좌우를 에워쌌고, 창송(蒼松)과 녹죽(綠竹)은 뜰앞에 늘어섰다.

니구산(尼丘山) 뭇 봉우리 우뚝히 솟았으니 흡사 추로(鄒魯)의 고장 같고 신안강(新安江) 일대를 바라보니 저멀리 염락(濂洛)의 근원에 접한 듯 하다.

 

兒郎偉抛梁東 新安美號揭無窮 澄江活潑淵源遠 萬祇朝宗向聖宮

兒郎偉抛梁西 尼岫重看彩鳳棲 屹屹千秋天半立 喚醒箇裡幾人迷

兒郎偉抛梁南 郁郁文明聖化覃 培養棟梁材可用 堂前峯色映台三

兒郎偉抛梁北 斯文一柱齊天極 更將誠敬爲入門 濟濟衣冠躋禮俗

兒郎偉抛梁上 生徒隷業宵懸帳 滿堂衿佩玉鏘鏘 俎豆春風回氣像

兒郎偉抛梁下 一邦自此弘儒化 嗟哉吾黨二三人 大庇萬間之廣廈

어영차! 대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신안(新安)의 좋은 이름 무궁하게 빛난다. 맑은 강 활발하여 길고 먼 연원이니 크고 많은 물줄기 성궁(聖宮) 향해 흐르네.

어영차! 대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니구산(尼丘山) 다시 봄에 채봉이 깃들었다. 높고 큰 산 영원토록 중천에 우뚝하네. 정신차려 살펴보니 길 잃은 이 얼마인고.

어영차! 대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아름답고 성한 문명 성화(聖化) 널리 뻗쳤다. 동량(棟梁)을 배양하여 인재들 쓸만 하니 명륜당 앞 봉우리에 삼태성(三台星) 비치네.

어영차! 대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사문(斯文)의 기둥 하나 하늘 높이 솟았다. 성경(誠敬)한 마음지녀 대문을 들어서니 수많은 의관 선비 예속(禮俗)따라 당에 오르네.

어영차! 대들보를 위로 던지니 생도들 휘장 걸고 밤중까지 공부한다. 만당한 선비들 패옥소리 쟁쟁하니 향사 자리 춘풍불어 기상(氣像)을 회복했네.

어영차! 대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한 고을 이제부터 유교 널리 교화하리. 아아! 오당(吾黨)의 여러분은 만간(萬間)의 넓은 집을 크게 비호하소.

 

伏願上梁之後文風益振儒道復興書同文行同倫共躋禮義之域朝而絃夜而誦一變鄒魯之風

삼가 바라노니 상량한 뒤로는 글을 숭상하는 기풍이 진작되고 유도가 부흥하리. 도학을 같이하고 윤리를 같이하여 예의의 자리에 함께 나아가고, 아침에 공부하고 저녁에 복습하면서 추로(鄒魯)의 문풍(文風)을 일신 하세.

 

雍正三年乙巳二月十九丁亥日丙午時 檀紀四五八年(英祖元年)

牧使 尹基慶

영조1(1725) 을사 219일 목사 윤기경(牧使 尹基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