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不遠人(도불원인)

정운종의 고전공부

향교(鄕校) 서원(書院)

산청의 향교(鄕校)

도원 정운종 2025. 12. 7. 16:35

[단성향교 (丹城鄕校)]

-.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

-. 고려 인종 5(1127)에 지은 후 조선 세종(재위 14181455) 때 서쪽 산기슭으로 옮겼다가 영조 28(1752)에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지었다한다.

경사지에 위치하여 앞쪽에는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이, 뒷쪽에는 사당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정문인 관선문을 들어서면 누각형식의 명륜당이 있는데, 대청 아래를 통하여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명륜당 밑을 통하여 내삼문과 대성전의 지붕이 겹쳐서 보인다.

강당인 명륜당이 누각형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정문을 평대문으로 처리하였으며, 대문의 양 옆으로는 긴 행랑채를 이루고 있다. 명륜당의 뒷쪽 좌우에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였다. 일반적인 향교와 달리 양재가 명륜당보다 안쪽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뒷쪽에 있는 내삼문 쪽이 앞면이 되고 앞쪽의 대문쪽은 뒷면이 된다. 따라서 대청과 마루는 양재가 있는 내삼문쪽으로 개방되는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또한 명륜당의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내삼문의 지붕도 이와 비슷하다. 내삼문은 앞면 7칸의 큰 규모로, 가운데 3칸은 삼문을 달고 양쪽 끝 1칸씩에는 일상적으로 출입하는 문을 달고 그 앞으로 계단을 두었다. 내삼문 안에는 대성전이 있는데, 대성전 앞 양쪽으로 양무 대신 전사청과 제기고의 역할을 하는 두 건물을 둔 점도 주목된다.

단성향교는 건물의 배치나 형태에 있어서 경남지역의 다른 향교보다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는 향교이다.

-. 단성현 호적대장은 조선 숙종(肅宗) 4(1678)부터 정조 13(1789)까지 단성현 관하 단성, 신안, 생비량, 신등의 4개 면 주민의 호구기록부이다. 호적대장에는 가구의 소재지, 호주와 호주처의 신분, 성명, 연령, 본관, 4(..증조.외조)와 동거인, 소유노비 및 고공(雇工 :머슴)의 이름, 나이, 부모 등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 전체의 주민상을 연속적으로 살피고 신분확인, 징병조역, 농민의 편제, 노비의 추세등 조선후기의 사회상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산청 향교 (山淸鄕校)]

-. 경남 산청군 산청읍 지리

-. 조선 세종 22(1440)에 처음 지어진 후 전쟁으로 여러 차례 불탄 것을 영조 31(1755)에 원래의 위치인 이곳에 다시 짓고 그 후 여러 차례 보수했다.

건물의 배치는 앞쪽에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있고 뒤쪽에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과 사당인 대성전이 위치하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내삼문의 계단이 직선이 아닌 ㄴ자로 되어있고, 명륜당 뒤의 대성전도 약간 비틀어져 위치하고 있다.

-. 조선시대에는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이곳은 여러 가지 제사기구, 술잔, 선비옷 등의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양식을 잘 알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