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不遠人(도불원인)

정운종의 고전공부

나의 이야기

구절초.쑥부쟁이.개미취

도원 정운종 2019. 10. 24. 20:35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란 시이다.

가을이면 산에 들에 지천으로 핀 꽃을 보며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지만, 그들이 구절초.쑥부쟁이.개미취임을 모르고 그냥 들국화라고 한다. 정작 식물도감에는 들국화는 없거니와 구절초.쑥부쟁이.개미취는 각자 이름에 맞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내가 꽃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내게로 다가온다'고 시인이 말했듯이, 구절초.쑥부쟁이.개미취 꽃이름에 맞게 불러야겠다. 이제는 그들을 구별 못하는 무식이를 벗어나야겠다.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는 모두 국화과에 속하지만 꽃 색깔, 잎, 줄기를 같이 비교해 보면 구별이 가능하다.
구절초는 꽃이 희거나 옅은 분홍색을 띠지만 쑥부쟁이는 대부분 옅은 보라색이고, 개미취는 더 진한 푸른색을 띠는 보라색이다.
꽃잎은 구절초 꽃잎 끝이 굵고 동글동글하고, 쑥부쟁이는 구절초보다 꽃잎이 길고 날씬하다. 구절초 꽃잎은 뒤로 젖혀지지 않고 쑥부쟁이 꽃은 뒤로 젖혀진다.
개미취 꽃은 쑥부쟁이에 비해서 꽃잎수가 적고 만개한 꽃을 옆에서 보면 뒤쪽으로 젖혀지지 않고 앞쪽으로 몰린 듯이 보인다.

잎도 구별가능하다. 구절초 잎은 긴 타원형이고, 쑥부쟁이 잎은 주변에 굵은 톱니가 있고 위로 갈수록 작아진다. 개미취 잎은 날카로운 톱니(어린 잎은 물결모양 톱니)와 끝이 뾰족하다.
구절초 줄기는 잎이 9마디로 구분되고, 쑥부쟁이는 꽃나무 전체가 좀 복잡하게 엉켜있는 느낌이 든다. 개미취는 윗부분에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가지에 짧은 털이있다. 향기는 구절초는 국화향이 나지만,쑥부쟁이와 개미취는 향기가 별로 없다.

구절초.쑥부쟁이.개미취 모두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생하고 중국.몽골.일본등 동북아시아에 분포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근거지와 같고, 오랫동안 우리의 먹거리와 약재로 쓰였음으로 친숙한 친구식물임이 분명하다. 이젠 맞는 이름을 불러주고 조금 더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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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구절초는 가을 들국화의 대표주자로 산기슭이나 높은 산 정상부의 바위틈에서 주로 서식한다. 최근에는 관상용으로 공원에도 많이 식재한다. 구절초(九節草)는 9월 9일이 되면 꽃대가 아홉 마디가 되어 이때 꺾어서 약으로 쓰면 좋다고 한다.
국화과 다년생 풀로 서식지는 한국과 중국 동북부, 몽골의 저지대 등에 분포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영어명은 존재하지 않고 일본에서는 조선들국화(朝鮮野菊), 중국에서는 광엽자화야국(廣葉紫花野菊)이라 하여 ‘들국화’란 명칭이 붙는다. 그 자태가 너무도 고결하여 ‘순결한 사랑’, ‘순수’, ‘어머니의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다. ‘천상의 꽃’, ‘신선이 어머니에게 내린 약초’라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른다. 그 이름처럼 약효는 부인병, 생리불순, 어혈을 풀어주는 효과 등이 뛰어나다고 한다.

음력 9월 9일은 동양에서는 양수(홀수) 중 가장 큰 숫자로 가장 경사스런 절기인 중양절(重陽節) 혹은 중구일(重九日)이다. 9가 두 번 겹치는 명절로 3월 3일(삼짇날),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과 같은 중일명절(重日名節) 중 가장 큰 명절로 여겨왔다. 3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다시 돌아가는 날도 이 중양절이다. 중양절에는 국화를 감상하거나 산에 올라가 국화전을 먹고 국화주를 마시며 즐기는 등고(登高)라는 세시풍속도 있었다. 추석 때 햇곡식으로 차례를 드리지 못한 집에서는 이날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구절초의 ‘구절(九節)’이란 이 중양절을 의미한다. 음력 9월 9일 무렵에 채취하는 잎과 뿌리가 가장 약성이 뛰어난 약초라 하여 구절초란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구절초는 대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지 바위틈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주로 하얀 순백색의 꽃이 대부분이지만 바위구절초, 한라구절초, 산구절초와 같은 것은 연분홍의 꽃이 핀다. 낙동구절초, 포천구절초, 서흥구절초 등 서식지의 풍토와 환경 특성에 따라 여러종이 있다.

구절초에는 미색의 선녀 이야기가 전한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를 보필하는 어린 선녀가 꽃을 좋아한 나머지 상제의 보필에 소홀해 그만 지상으로 쫓겨나게 됐다고 한다. 지상에 내려와 살던 선녀는 가난하고 시를 즐기는 시인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여쁜 선녀의 미색이 소문을 타고 그 고을 사또의 귀에 들어갔고, 욕심 많은 호색한이던 사또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갖은 꾀를 다하다가 그녀의 남편을 불러놓고 제안을 하게 됐다.

첫 번째 제안은 시 짓기 시합 이였는데 남편이 손쉽게 이겼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사또는 이번에는 말타기 시합을 하자고 말 두필을 대령했는데 사또가 탄말이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또 지고 말았다. 그러자 사또는 선녀를 붙잡아 옥에 가두고 모진 협박과 회유로 선녀를 유혹하였다. 선녀는 절개를 지킨 채 거절을 했고 그 일이 의금부에 알려져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녀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옥황상제가 있는 천상으로 돌아갔다. 너무 슬픈 남편도 그녀를 따라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듬해부터 가을이면 그들의 집주위에 하얀 구절초가 피어났는데 천상의 선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꽃이라고 한다. 절개를 뜻하는 천상의 꽃 ‘仙母草’라고도 한다.

[쑥부쟁이]
쑥을 캐러 간 불쟁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핀 꽃이라고 하여 쑥부쟁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슬픈 전설이 담긴 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11남매의 자식이 있었다. 대장장이의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항상 들과 산으로 쑥나물을 캐러 다녔다. 동네사람들은 그녀를 쑥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네 딸’이라는 뜻의 쑥부쟁이라 불렀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쑥부쟁이는 산에 올랐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를 숨겨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노루는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산 중턱쯤을 내려왔을 때 이번에는 한 청년 사냥꾼이 산짐승을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좀 전의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었다. 쑥부쟁이는 칡덩굴을 구덩이에 넣어 사냥꾼을 구해주었다. 사냥꾼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번 가을에 꼭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다. 쑥부쟁이는 그 사냥꾼의 늠름한 모습에 호감을 가지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열심히 일했다. 마침내 기다리던 가을이 찾아왔다. 쑥부쟁이는 사냥꾼을 만난 그 산을 매일처럼 올랐지만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쑥부쟁이는 더욱 가슴을 태우며 기다림 속에 몇 번이나 가을을 맞았지만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쑥부쟁이의 그리움은 갈수록 더해 갔고,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쑥부쟁이는 곱게 단장을 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정한 수 한 그릇을 떠놓고 어머니를 낫게 해달라고 산신령께 기도를 했다. 그러자 몇 년 전에 목숨을 구해준 노루가 나타나 노란 구슬 세 개가 담긴 보랏빛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노루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쑥부쟁이는 우선 구슬 한 개를 물고 소원을 말했다. “우리 어머니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병이 순식간에 나았다. 그해 가을 쑥부쟁이는 또다시 산에 올라 사냥꾼을 기다렸지만 사냥꾼은 오지 않았다. 쑥부쟁이는 노루가 준 구슬주머니를 생각해 내고는 그 속에 있던 구슬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바로 사냥꾼이 나타났다. 그러나 사냥꾼은 이미 결혼을 하여 처자식을 둔 처지였다. 사냥꾼은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한양 가서 함께 살자고 했다. 그렇지만 맘씨착한 쑥부쟁이는 다짐했다. ‘저이에게는 처자식이 있으니 그를 다시 돌려보내야겠다.’ 쑥부쟁이는 마지막 남은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했다.

그 후에도 쑥부쟁이는 그 청년 사냥꾼을 잊지 못했다. 세월은 지나갔으나 쑥부쟁이는 그 그리움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동생들을 돌보며 늘 산에 올라가 그 청년을 그리워하며 나물을 캤다. 그러던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쑥부쟁이가 죽고 난 뒤 그 산등성이엔 더욱 많은 나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마을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걱정하여 나물로 돋아난 것이라 믿었다. 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와 주머니 속 구슬과 같은 색깔이며, 긴 목처럼 올라온 꽃대는 아직도 그 청년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진다.

쑥부쟁이의 잎은 나물로 즐겨 먹었다. 울릉도 특산물 부지깽이도 실은 ‘섬쑥부쟁이’이다. 삶은 다음 건조하여 묵나물로 저장하여 겨울철 국으로 즐겨 끓여 먹었다. 쑥부쟁이의 잎은 소화를 돕고 혈압을 내리며, 천식과 기침에도 좋다고 한다. 하여 한방에서는 해열제와 이뇨제로 쓰기도 한다.

[개미취]
개미취는 개미(蟻)+취(나물)로 보여 꽃대에 개미가 붙어있는것처럼 작읏 털이있고,한국 전통적으로 식용나물로 쓰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개미의 뜻에 '연줄을 질기고 세게 하기 위해 연줄에 먹이는 물질'인 우리 고유말인 개미로 이해하기도 한다. 꽃자루에 붙어있는 작은 털이 연줄을 세게하기 위해 유리나 사기가루를 아교풀로 먹인 모습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자 이름은 자원(紫菀)으로 자주색 꽃이 무성하다는 뜻으로 옛부터 약재로 사용되어 왔으나, 약재로서 순우리 말은 탱알로 옛 문헌에 남아있다한다. 어린 잎은 식용나물로 쓰이고 뿌리는 기관지염등에 약용으로 쓰인다.
개미취와 유사한 벌개미취 또한 우리나라 고유의 식물자원이다. 벌은 들(벌)판에 핀 또는 별(Aster) 모양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벌개미취 학명이 고려쑥부쟁이 (Aster Koreaiensis)로 한국 특산종임을 영어 학명에 표시되어 있다. 개미취보다 꽃크기가 크다. 개미취가 백원 동전 크기면 벌개미취는 오백원 동전 크기가 된다. 벌개미취의 줄기에 파인홈과 줄이 있는게 특징이다.

<흰꽃이 구절초, 보라색이 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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