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不遠人(도불원인)

정운종의 고전공부

나의 이야기

습정양졸(習靜養拙)

도원 정운종 2019. 12. 24. 16:23

한해를 보내는 심경을 표현한 글 입니다.

"올 한해 우왕좌왕 분주하게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손에 쥔 것은 별로 없다. 세밑 언덕에 서니 이게 뭔가 싶어 허망하다."

이럴때 옛 사람들이 지녔던 몸가짐입니다.

"습정양졸(習靜養拙)"

고요함을 익히고 소박함을 기른다. 번거로움을 잊고 고요함을 익히고, 잘난 체하는 마음을 버려 본마음으로 자신을 찾아보겠다는 말이다. (拙 : 옹졸할 졸.소박할 졸)

 

신흠(申欽)의 '우감(偶感)' 시 첫 수는 이렇다. 

習靜忘機事 隨緣養性靈. (습정망기사 수연양성령)

고요 익혀 따지는 일 잊어버리고, 인연 따라 성령(性靈)을 길러보누나. 

 

無心答賓戲 白晝掩山扃.(무심답빈희 백주엄산경)

손님의 농담에 답할 맘 없어, 대낮에도 산집 빗장 닫아둔다네

 

고요함에 익숙해지자 헤아려 살피는 일도 심드렁하다. 마음 밭은 인연 따라 흘러가도록 놓아둔다. 작위하지 않는다. 실없는 농담과 공연한 말이 싫다. 

 

산자락 집 사립문은 대낮에도 굳게 잠겼다. 나는 나와 대면하는 게 더 기쁘다. 나는 더 고요해지고 편안해지겠다.

 

이수광(李睟光)도 '무제(無題)'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坐忘終日一言無 (좌망종일일언무)

這裏工程足自娛 (저리공정족자오)

온종일 말도 없이 좌망(坐忘)에 들었자니, 이렇게 지내는 일 홀로 즐김 넉넉하다. 

 

身在動時猶習靜 (신재동시유습정)

澹然隨地見眞吾 (담연수지견진오)

몸을 움직이면서도 고요함을 익히니, 담백하게 어디서건 참 나가 드러나네.

 

좌망은 나를 잊은 경계다. 말을 잊고 욕심을 거두자, 부지런히 움직여도 마음이 고요하다. 담담하게 때 없이 참 나와 만난다. 이게 나고 이래야 나다.

 

정약용(丁若鏞)이 이승훈(李承薰)에게 보낸 답장에서 말했다. 

近日習靜養拙, 覺世間百千萬快樂如意事, 總不如自己上有安心下氣四字.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拙), 세간의 천만 가지 즐겁고 득의한 일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는 것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心苟安矣, 氣苟下矣, 方知眼前櫻觸, 無非吾分內事.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忿嫉愎戾之情, 漸漸消滅.

분하고 시기하며 강퍅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目爲之瞭, 眉爲之展, 脣爲之單辰, 血脈爲之和暢, 四肢爲之舒泰.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而凡有所謂不如意事, 皆怡然可樂.

이른바 여의치 않은 일이 있더라도 모두 기뻐서 즐거워할 만합니다.

 

세 사람이 모두 습정(習靜)을 말했다. 마음을 더 차분히 내려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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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拙(양졸)의 전고(典故)

[白居易(백거이)의 시]

鐵柔不爲劒 木曲不爲轅. (철유하위검 목곡불위원)

今我亦如此 愚蒙不及門. (금아역여차 우몽불급문)

甘心謝名利 滅跡歸丘園. (감심사명리 멸적귀구원)

坐臥茅茨中 但對琴與尊. (좌와모자중 단대금여존)

身去韁鎖累 耳辭朝市喧. (신거강쇄라 이사조시훤)

逍遙無所爲 時窺五千言. (소요무소워 시규오천언)

無憂樂性場 寡欲清心源. (무우락성장 과욕청심원)

始知不才者 可以探道根. (시지부재자 가이탐도근)

 

쇠가 무르면 칼이 되지 못하고, 나무가 굽으면 수레의 끌채 되지 못하네.

이제 나도 이와 같으니, 어리석고 몽매하여 입문(入門)도 못하겠네.

달갑게 명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취를 감춰 전원으로 돌아왔네.

초가집에 앉았다가 누웠다 하며, 오로지 거문고와 술잔을 마주하네.

몸은 명리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귀는 세상의 소란함을 떠났다네.

소요하며 하는 일이 없으니, 때때로 노자(老子) 도덕경을 살펴보네.

근심 없이 본성의 바탕을 즐기며, 욕심을 줄여서 마음의 근원을 맑게 하리라.

이제야 알았노라, 재주 없는 사람이라야, 진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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