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體)와 용(用)]
동양사상에서 체용(體用)이 많이 언급된다. 불교.유교(성리학) 그리고 술학(명리학)에서 보는 체(體)와 용(用)에 대해서 알아본다.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체용(體用)이다.
선종의 중창조인 혜능스님의 '6조단경'에 체용(體用)이 명쾌하게 설명되어있다.
"정(定)혜(惠)는 등불의 등(燈)과 빛(光)과 같다. 등이 있어야 빛이 있고, 등이 없으면 빛도 없다.
즉 등은 빛의 체(體)이고, 빛은 등의 작용(用)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나 몸은 둘이 아니니, 정과 혜도 이와 같다."
[定惠 猶如何等 如燈光
有燈卽有光 無燈卽無光.
燈是光之體 光是燈之用
名卽有二 體無兩般.
此定惠法 亦復如是]
(해설)
정혜(定慧)는 적조(寂照.고요한 가운데 밝게 비추는 것)이다. 적(寂)이 체(體)요, 조(照)가 용(用)이 된다. 고요하면서 늘 비추고 (寂而常照)
비추면서 늘 고요한 (照而常寂)
적조쌍류(寂照雙流)하게 되는 것이다.
ㅡㅡㅡㅡ
다음은 유학. 성리학의 비조 주희 선생이 근사록(近思錄)에서 설명하는 체용(體用)이다.
"희,노,애,락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가리켜 중(中)이라 한다.-체(體)
중(中)은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천하의 으뜸이라 한다.
정(情)이 싹터나와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용(用)
화(和)는 느끼어 두루 통하는 것을 말하고 달도라고 한다.
마음은 하나다. 체(體)의 면만을 말할수 있고 용(用)의 면만을 말할수 있으므로 그 보는 바를 잘 관찰 해야만 한다.
[伊川先生曰 :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中也者 言寂然不動者也 故曰天下之大本
發而皆中節 謂之和 和也者 言感而遂通者也 故曰天下之達道.
心一也
有指體而言者 有指用而言者
惟觀其所見如何耳]
(해설)
중용(中庸)에 중(中)은 도의 체요, 화(和)는 도의 용으로 만물과 성정의 이치가 도의 체용에 있다고 했다.
간단하게 이기(理氣)론에 대입하면, 이(理)는 체(體), 기(氣)는 용(用)으로 보아, 이(理)와 기(氣)가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ㅡㅡㅡㅡ
명리학(命理學) 중요교재인 적천수(滴天髓)에 쓰인 체용에 대한 설명이다.
"도(道)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다, 한쪽 부분만 논(論)해서는 안되며, 요점은 부조(扶助)해야 할지 억제(抑制)해야 할지 그 마땅한 바를 얻는데 있다."
[道有體用, 不可以一端論也,
要在扶之抑之得其宜]
(해설)
일간(日干)을 체(體)로 보고 월지(月支)를 용(用)으로 해석한다. 또는 형상기국(形象氣局)이 체(體), 용신(用神)을 용(用)으로 본다.
왕성(旺盛)하면 억제(抑制)하고 쇠약하면 부조(扶助)하는 것이 기본 이치이다.
동양사상에서 체용(體用)이 많이 언급된다. 불교.유교(성리학) 그리고 술학(명리학)에서 보는 체(體)와 용(用)에 대해서 알아본다.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체용(體用)이다.
선종의 중창조인 혜능스님의 '6조단경'에 체용(體用)이 명쾌하게 설명되어있다.
"정(定)혜(惠)는 등불의 등(燈)과 빛(光)과 같다. 등이 있어야 빛이 있고, 등이 없으면 빛도 없다.
즉 등은 빛의 체(體)이고, 빛은 등의 작용(用)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나 몸은 둘이 아니니, 정과 혜도 이와 같다."
[定惠 猶如何等 如燈光
有燈卽有光 無燈卽無光.
燈是光之體 光是燈之用
名卽有二 體無兩般.
此定惠法 亦復如是]
(해설)
정혜(定慧)는 적조(寂照.고요한 가운데 밝게 비추는 것)이다. 적(寂)이 체(體)요, 조(照)가 용(用)이 된다. 고요하면서 늘 비추고 (寂而常照)
비추면서 늘 고요한 (照而常寂)
적조쌍류(寂照雙流)하게 되는 것이다.
ㅡㅡㅡㅡ
다음은 유학. 성리학의 비조 주희 선생이 근사록(近思錄)에서 설명하는 체용(體用)이다.
"희,노,애,락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가리켜 중(中)이라 한다.-체(體)
중(中)은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천하의 으뜸이라 한다.
정(情)이 싹터나와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용(用)
화(和)는 느끼어 두루 통하는 것을 말하고 달도라고 한다.
마음은 하나다. 체(體)의 면만을 말할수 있고 용(用)의 면만을 말할수 있으므로 그 보는 바를 잘 관찰 해야만 한다.
[伊川先生曰 :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中也者 言寂然不動者也 故曰天下之大本
發而皆中節 謂之和 和也者 言感而遂通者也 故曰天下之達道.
心一也
有指體而言者 有指用而言者
惟觀其所見如何耳]
(해설)
중용(中庸)에 중(中)은 도의 체요, 화(和)는 도의 용으로 만물과 성정의 이치가 도의 체용에 있다고 했다.
간단하게 이기(理氣)론에 대입하면, 이(理)는 체(體), 기(氣)는 용(用)으로 보아, 이(理)와 기(氣)가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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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命理學) 중요교재인 적천수(滴天髓)에 쓰인 체용에 대한 설명이다.
"도(道)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다, 한쪽 부분만 논(論)해서는 안되며, 요점은 부조(扶助)해야 할지 억제(抑制)해야 할지 그 마땅한 바를 얻는데 있다."
[道有體用, 不可以一端論也,
要在扶之抑之得其宜]
(해설)
일간(日干)을 체(體)로 보고 월지(月支)를 용(用)으로 해석한다. 또는 형상기국(形象氣局)이 체(體), 용신(用神)을 용(用)으로 본다.
왕성(旺盛)하면 억제(抑制)하고 쇠약하면 부조(扶助)하는 것이 기본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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