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마을 풍수(風水)이야기를 풀어본다.
백두대간이 지리산에서 큰 매듭을 지은 후 한 줄기가 동쪽 웅석봉으로 뻗는다. 웅석봉의 지맥은 한치고개.석대산을 거쳐 중촌.소귀마을 에서 엎드렸다가 소괴산. 상사 뒷산으로 뻗는다, 웅석봉의 다른 한 용맥은 달뜨기능선. 백운산.길리를 거쳐 남사 앞산으로 흘러가 마을을 둘러싼다. 뒷산은 겨울 찬바람을, 앞산은 태풍과 같은 큰 바람은 막고 생활에 필요한 바람은 껴안고 통과시키는 구조이다.
그리고 웅석봉에서 발원한 남사강(사수)은 남사.상사를 휘감으면 내려간다. 물길은 마을 집집 우물에 맑은 지하수를, 마을앞.뒤 들판에 풍부한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풍수의 기본 원칙인 장풍득수(藏風得水)가 되는 터인 것이다.
풍수 형국론 관점에서는 남사.상사마을을 쌍용교구(雙龍交媾)형이라 한다. 즉 남사 앞산.상사 뒷산의 두 암.숫 용이 서로 사랑(交媾.교구)하는 형국으로 본다. 이때 암.숫용 머리와 꼬리를 어디로 볼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1) 첫번째 의견 : 두 용이 서로 꼬리를 물고 도는 모양.
이구산(암룡 머리)이 머리를 내밀어 북바위에 내린 숫용 꼬리부를 향한다. 신선대(숫용 머리)에서 내려온 숫용 머리는 벼르까시 아래 도평들판으로 내린 암 용꼬리를 향하며 휘돈다..
2) 둘째 의견 : 용이 뱀의 습성과 유사하다면 사랑행위로 서로 마주보고 껴안는 형상이다. 따라서 이구산.당산이 각각 암.숫 용 머리부가 된다. 그러면 숫 용의 꼬리 부를 어디로 볼 것인가가 하는 의문이 든다. (고수님들의 상상력과 의견필요)
사람들은 풍수지리 즉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주변 남강 주변의 선사시대 유적, 청동기시대 유물. 신라대의 단속사지가 있음을 볼때, 자연지리 조건이 뛰어난 남사들에도 적어도 수천년 이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 왔을 것이다.
마을 풍수형국이 두 용이 사랑하고 생명을 잉태하듯, 마을의 생명력은 끊임없이 살아났을 것이다. 수천년동안 수많은 씨족.문중.집안이 새 터전을 찾아서. 권력에서 은퇴하여. 난을 피해서. 외가.처가에 안주하러 마을로 와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절인연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치며 마을의 역사를 이루고 왔음이다.
풍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주팔자보다 관상이. 관상보다 심상이 중요한 것과 같이, 마을 풍수 좋음 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들이 모여 빛나는 것이 더 아름답고 가치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을로 가꾸어나가길 빌어본다.
* 마을 형국이 반월형(半月形)으로 달도 가득차면 기우므로 마을 가운데(마을 회관부근.주차장)를 비워 둔다고 한다. 또는 배가 떠가는 행주형(行舟形)으로 보아 마을 가운데 우물 파는 것을 금했다고도 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 태종 이방원-낙마씬 (0) | 2022.01.23 |
---|---|
조선왕조 계보 / 유네스코 등록 조선 왕릉 (0) | 2021.12.18 |
권도(權道)와 시중(時中) (0) | 2020.08.06 |
체(體)와 용(用) (0) | 2020.06.06 |
命理學 實戰 (0) | 2020.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