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정든다.”- 지금 살고 있는 부평.삼산동 지명 유래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지금 사는 곳은 수 많은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사는 곳은 그때 그때 불리던 이름이 있었고 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천되어 왔을 것이다. 그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면 나도 긴 흐름에서 작은 일부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부평의 삼국시대 이름은 주부토군(主夫吐郡), 장제군(長堤郡) 또는 수주(樹州)이다.
: “장제군(長堤郡)은 본래 고구려 주부토군 인데 경덕왕때 이름을 바꿨고, 지금은 수주(樹州)로 4개현을 관할한다.(長堤郡 本高句麗主夫吐郡 景德王改名 今樹州 領縣四) - 삼국사기"
고려시대에는 수주(樹州)로 불리다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고 조선시대에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가 된다.
‘주부토’의 어원.
1) 이두식 표기 ‘임금의 땅’
-. ‘주’를 ‘님’으로 해석 : 이두식 표기예로 신라향가 ‘서동요’에서 “善花公主主隱(선화공주님은..)“에서 ‘主’가 ‘님(주인.어른.왕.부족장)’으로 쓰임.
: 님->니마.나마 -> 니부.나부->주부(主夫)로 변천
-. 토(吐)는 장소(곳.땅)를 의미하는 ‘터’ : 데.터->토(한자차용), (예) '가운데‘ 의 '데'는 장소를 뜻함.
따라서 주부토는 ‘주인의 터(땅), 임금의 터(땅)’뜻인 ‘나마데. 니마데’를 표기하기 위해 한자를 차용하여 주부토(主夫吐).
-. 주부토군, 장제군 또는 수주가 같은 의미로, 주부(主夫)=장(長)=수(樹), 토(吐)=제(堤)=주(州)로 유추할 수 있다.
: 나무 수(樹)는 ‘님’의 뜻인 ‘나마.니마’-> ‘나무‘ 로 변천과정에서 한자를 차용.
2) 부(夫) <- 불.부리 <- 마을. 벌판. 산 : (예) 서라벌, ‘주’는 ‘님’으로 보면 '주부'는 역시 “주인의 터”가 된다.
3) 줄보뚝(둑) -> 주부토
: 부평, 계양, 부천지역은 한강 하구에 위치하므로 밀물 또는 홍수시에는 넓은 지역이 범람하여, 고대로부터 계양산-원적산-부천 성주산 아래로 뚝을 계속해서 쌓으며 경작지를 넓혀 나왔을 것이다. 즉 여러 둑이 줄을 지어 이어진 모습에서 줄보둑(‘보’는 ‘부리.불’ 어원)에서 주부토로 한자표기 되었을 것이다. 장제(長堤. 긴 둑)도 같은 의미다.
고려시대에 불린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어원도 알아본다.
수도 개경을 기준하여 ‘남쪽을 편안하게 평정하다(安南)’는 뜻으로 "수주(樹州)에 안남도호부를 이전설치 했다."는 기록이 있다.
: 황해도에는 안서(安西)도호부가 설치되고, 현 계양산은 수주악(樹州岳)에서 안남산(安南山)으로 바뀌어 불림.
: 중국의 남쪽지방인 현재 월남(베트남)에 안남(安南)도호부를 둠과 비슷.
-. 또는 이두식 표기로 안(安)은 '임금.주인'의 뜻으로 볼 수 있다. 고대어 ‘아나(주인.임금)’ ->‘아라.나라.안(한자 安표기)’ 으로 변천.
: 남(南)은 님(主)의 고대어 ‘나마’-> ‘님.남(한자 南표기)’로 변천되므로, ‘안남’은 ‘주부토’와 같은 의미인 ‘주인의 땅’ ‘임금의 땅’이 된다.
부평(富平)의 유래.
산업화 되기전에 부평지역은 넓은 곡창지대여서 ‘풍족한 들판’ 뜻의 부평(富平)이라 불렸다. 그러나 조선말까지 이곳은 바닷물이 밀려들어 여러 방축과 다리가 있던 곳으로 ‘풍요로운 들판‘이라고만 할 수 없다.
부(富)의 어원은 금.김(金)과 같다는 해석이 있다.
: 강원도 김화군(金化郡)은 옛날에는 부평군(富平郡)으로 불렸다. “부평군은 본래 고구려의 부여군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김화현이다. (富平郡 本高句麗夫如郡 景德王改名 今金化縣)-삼국사기”
금(金)은 ‘신’이나 ‘거룩한 존재’를 뜻하는 우리 옛말 ‘검’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면 부평.김화는 ‘거룩한 땅’, ‘높은 사람이 다스리는 땅’으로 해석되어 ‘주부토’와 뜻이 비슷하다.
: (예) 백제수도 공주의 옛이름 웅진(熊津)을 ‘고마나루‘라 한다. 신(神)이라는 의미의 ‘ᄀᆞᆷ’이 ‘곰· 고마’로 바뀌었으며, 이는 ‘겜·검·곰·금’ 으로도 쓰일 수 있다. 또한 왕의 옛 의미도 있다.(예. 단군 왕검)
: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고맙다‘의 말의 어원도 ’검(신.거룩한 이)같다->곰답다->고맙다‘와 같이 상대를 신과 같이 존중해 주는 뜻이 있다.
: 김화(金化)의 화(化)는 접미사 역할.
: 부산(釜山)광역시의 이름의 유래는 부산항에 접한 산이 마치 가마솥 모양이라 하여 ‘가마솥산‘(釜山)이라 한다. 그런데 조선초기 지도에는 부산(富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여기서 ’가마‘는 가마솥과는 다른 ’감.검.곰.까미‘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검‘의 변형 ’가마‘를 한자로 바꾸면서 가마솥의 뜻을 가진 ’釜‘를 쓴 것일 수 있다.
: 평(平)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들판
삼산동(三山洞) 유래
삼산동 옛이름은 ‘후정리(後井里)’이다. 옆 동네인 갈산의 아랫마을 (갈월리)의 동쪽 능성너머에 있는 마을로 구릉으로 둘러싸인 곳에 큰 우물을 파고 동네를 이뤘는데 ‘뒤우물말’ 또는 ‘뒷마을’에서 후정리 이름이 유래한다. (우물 정井은 마을이라는 뜻으로도 사용)
삼산동(三山洞)은 일제말의 삼립정(三笠町. 笠:삿갓 립)에서 유래되어 해방후에 지어졌는데, 마을에 작은 3개의 산이 있었다 한다. : 현재 부평정수장이 위치한 ‘갈산(葛山)’ 과 그 옆에 있었던 ‘영성산(靈成山.경인고속도로 전신인 국방도록 건설로 없어짐)’ 과 ‘금산(金山.수출4공단 조성으로 없어짐)'의 3개의 작은 산이 삿갓처럼 솟아 있었다하여 삼산동이라 붙여짐.
옆동네 갈산동 (葛山洞) 유래
구한말까지 지명은 ‘갈우(葛隅)마을’이었다. 현 부평정수장이 위치한 약간의 고지대가 갈산인데 ‘갈우’는 갈산의 모퉁이(隅)란 뜻이다.
갈산(葛山)은 칡(葛)넝쿨이 많아 이렇게 불렸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갈산.갈메,갈재..’와 같이 ‘갈’자를 쓴 이름이 많은데 꼭 칡과 관계되지 않는다.
갈산의 갈은 순우리말 ‘가리’에서 나온말로 해석한다. ‘가리’는 산 또는 물줄기가 ‘갈라진 곳’을 뜻한다. (예. 머리의 ‘가리마‘). 즉 산줄기가 이리저리로 갈라졌다는 뜻이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칡 갈(葛)을 쓰고나서 ’칡이 많았다‘라는 해석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는 갈산의 ‘갈’이 ‘높다’라는 뜻의 우리말이 있다. (예. 대가리.대갈통), ‘갈매.갈매골.갈미굴.갈미’의 어원은 주변에 비해 높은 산(매.미.뫼)으로 볼 수 있다.
풍수지리 용어로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세)’의 갈(渴)자 일 수도 있고,‘짙은 초록색’을 뜻하는 순우리말 ‘갈매’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갈매’의 매를 ‘뫼(산)’으로 한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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