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不遠人(도불원인)

정운종의 고전공부

산청 문화관광해설사

문천(汶川)과 문상풍요(汶上風謠)

도원 정운종 2026. 1. 27. 21:49

<문천(汶川)과 묵곡마을>
문천은 남사천(泗水)이 흘러 경호강과 만나는 곳이다. 문천과 묵곡마을, 학이재 이야기이다.

● 묵곡마을 사람들의 풍속을 읊은 시 ‘문상풍요’와 창작공간 "학이재(學而齋)
/이정희 연구원의 경남일보 기고 글에서

-. 문상풍요(汶上風謠)
‘문상’은 제나라 남쪽과 노나라 북쪽 사이를 흐르는 문수(汶水)의 상류를 말한다.
노나라 권신 계강자가 덕행이 뛰어난 공자 제자 민자건을 노나라 수령으로 삼으려 하자, ‘나는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 문상에 가 있을 것이다’라며 벼슬을 사양한 데서 문상이 유래한다. 묵곡사람 혜산 이상규(1847∼1923)도 조정에서 의금부도사로 불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남사마을에서 흘러와 경호강과 합쳐지는 강을 문천(汶川)라고 이름하고, 문천 강변 상류 묵곡마을을 문상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풍요’는 풍속을 소재로 노래한 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책은 ‘묵곡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묵곡의 풍속을 읊은 시집’이라는 뜻이다. 산청 단성의 사월, 묵곡, 소남에 사는 이도묵, 이상규, 조호래 등의 지도로 묵곡에 사는 인물 33인이 참여해 416편의 시를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창작시집이다.
* 문상풍요는 이정희 경상대 고문헌도서관 연구원이 혜산의 후손 재실인 '한산재'(겁외사 뒤편 위치)에서 찾아 경상대에 기증되었다.

-. 학이재(學而齋)
‘문상풍요’의 시 창작 공간은 ‘학이재’였다.
학이재는 혜산이 문중 자제 교육을 위해 1904년에 건립한 서당이다. 학이재는 묵곡생태숲이 끝나는 지점 경호강 강가에 있다. 잘 생긴 소나무 세 그루가 경호강과 문천을 바라보는 곳인 학이재 대문 밖에는 ‘영귀교’와 ‘풍영대’라 쓰인 바위가 소나무 아래에 서 있다. 공자의 제자 증점이 ‘봄옷이 만들어지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 아래에서 바람을 쐬면서,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오고 싶다’고 말한 ‘논어’에서 따온 말이다.

혜산도 학이재에서 학동들을 가르치다가 증점처럼 문천에 가서 목욕하고 영귀교와 풍영대에 올라 벗들과 시를 읊조리겠다는 뜻이다. 서당을 들어서면 마루에는 학이재(學而齋, 배우고 익히는 집), 천상헌(川上軒, 문천 강가의 집), 취지헌(聚之軒, 지식을 모으는 집) 현판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처마 밑에는 ‘완락오(玩樂奧, 책을 사랑하여 즐기는 방), 양정실(養正室, 어린 학동을 올바르게 기르는 방)’ 현판이 걸려 있다. 벽에는 허유, 정면석, 장석신의 시가 걸려 있다. 학이재는 서부 경남 유학자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퇴락한 서당이 깔끔하게 정비된 것은 한산재에 살았던 혜산의 후손 이상석씨의 딸 이현숙씨 가족이 라벤더 농사를 지으면서 학이재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문상풍요에는 문상팔경, 엄혜산, 망해봉, 동강(桐江), 적벽, 탁청대, 환구정, 학이재, 송객정을 읊은 시, 묵곡에서는 농사짓는 모습, 학문에 대한 포부와 즐거움을 읊은 시가 다채롭게 등장한다.
묵곡에는 문상팔경이 있다.
엄혜산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
동강에 내리는 저녁 비,
망해봉의 낙조,
문천에서 고기 잡는 어부의 불빛, 송객정으로 돌아가는 돛단배,
고래들의 저녁연기,
자라봉의 아침노을,
신선대에 뜬 밝은 달을 가리킨다.

● 영귀교(詠歸橋),풍영대(風詠臺) 이야기
"논어"에 증점이 "기수에서 목욕하고 돌아가리"라 말한 것에 기원한다.

자로와 증석, 염유와 공서화 네 사람이 공자를 모시고 앉았다.
子路, 曾晳, 冉有, 公西華侍坐.
공자가 말했다. 내가 그대들보다 나이가 좀 많다고 해서 나를 어렵게 여기지 마라. 그대들은 평소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만일 혹시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자로가 경솔히 대답했다. 천승의 제후국이 대국의 사이에서 속박을 받아 그들이 군사로 개입하고 이 때문에 기근이 들거든, 제가 다스린다면 3년 정도면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방도를 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께서 웃으셨다.
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 夫子哂之.
염유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염유가 대답했다. 사방 60~70리나 혹은 50~60리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린다면 3년 정도면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거니와, 그 예악의 일이라면 군자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求, 爾, 何如.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공서화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공서화가 대답했다. 제가 능하다는 말이 아니오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또는 제후들이 서로 회동할 때 저는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 작은 집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赤, 爾, 何如.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증점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증점이 거문고 타기를 천천히 하면서 이윽고 찡! 하고 마무리 지으며 일어나 대답했다. 저는 세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무엇을 걱정하는가. 각자 자기의 뜻을 말할 뿐이다. 이에 대답했다. 늦봄에 봄옷이 이루어지면 관을 쓴 5~6명의 어른과 6~7명의 동자들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며 노래 부르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아! 하고 감탄하며 말씀했다. 나도 점과 함께하겠노라!
點, 爾, 何如. 鼓瑟希, 鏗爾舍瑟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夫子喟然嘆曰, 吾與點也. /"논어". 선진편

논어집주에서 주자는 해석한다. “증점은 평상시 생활을 즐거워해서 처음부터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하려는 뜻이 없었다. 그 흉중이 유연(悠然)하여 곧바로 천지 만물과 더불어 ‘상하’로 함께 교류하여 은연중에 말이 밖으로 드러났다. 반면 세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하고자 함의 말단에 급급해서 그 기상이 같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감탄하신 것이다.” 증점에 대해 평한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하려 함이 없었다’라고 한 것은 증점은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고 함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성(性)이 ‘발현’되고 정(情)으로 ‘드러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 문수(汶水) 이야기 : 논어에서 민자건이 한 말이다.
季氏使閔子騫爲費宰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노나라 대부 계씨가 사람을 보내 민자건을 費란 곳의 지방관으로 삼으려는 뜻을 전했다.
민자건이 말했다. “나를 위해 제발 사양해주십시오. 만약 나를 다시 찾는다면, 나는 분명 문수(汶水)가로 가 있을 것이오.” / 논어 옹야편

* 문수(汶水)는 노나라 남쪽과 제나라 북쪽 경계에 있는 강으로 문상.문수(汶上.汶水)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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