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사 나한상]
산청 내리의 지곡사터에서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옛날에 쌓았다가 허물어진 지곡산성(智谷山城)을 지나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은 웅석봉 등산길이고 오른쪽 가파른 언덕길이 심적사 가는 길이다. 심적사는 신라 경순왕 3년 (929년)에 이곳에 세워졌는데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힘있게 동쪽으로 내몰아 양쪽 산맥이 감싸는 곳에 터를 잡고 있다.
심적사에서 뒤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암벽이 있는데 나한암 자리이다. 나한암 전설이다. 옛날 강원도의 어느 절에서 한 중이 잦은 난리를 피하여 스물두 구의 나한불(羅漢佛)을 멱서리(짚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 지고, 산음이 들어서서 지금의 내리(당시는 지곡) 어느 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밥 먹을 때가 되어서 마을에 들렸다가 쉬고 있던 나무 밑에 와보니 멱서리 안의 나한불이 모두 없어져버렸다. 사방을 찾아 헤매다 보니까 심적사 뒤쪽의 풀 속으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므로, 따라가 보았더니 산등성이 넘어 절벽 바위 밑에 부처(나한불)가 놓여 있었다. 이상히 여긴 스님은 그곳에 나한암을 정하고 안치하였다.
한해 겨울 나한함에는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끊겨 식량과 불씨마저 떨어진 채 동지를 맞게 되었다. 스님 한사람이 외로이 나한암을 지키면서 팥죽도 못 쑤고 굶고 있는데, 동짓날 아침에 부엌에 나가보니 부뚜막에 팥죽이 한 그릇 놓여 있었으며 거기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불씨도 피고 있었다. 이상해 여긴 스님이 팥죽을 들고 불전에 들어가서 살펴보니 부처의 입술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 그 후 겨울이 지나고 봄에 스님은 산 넘어 홍계 마을에 탁발을 하러갔는데, 한 집에 들어가니 주인이 묻기를 "어느 절에서 왔느냐"라고 하므로 "나한암에서 왔다"라고 하였더니 주인이 반기면서 "지난 겨울 눈이 많이 온 동짓날 새벽에 나한암 상좌가 찾아왔기에 팥죽 한 그릇을 먹인 뒤 스님 한 분이 있다고 하여 팥죽 한 그릇과 불씨를 주어 보낸 일이 있는데 밤길에 잘 도착하였더나" 라고 묻는 것이었다.
스님은 즉각 지난 해 동짓날 아침에 있었던 의외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팥죽의 주인이 이 사람이라는 것과 입술에 팥죽 묻은 부처님이 한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극진히 하고 나한암에 돌아온 스님은 더욱 불도에 힘써 증진하여 성불하였다고 한다.
[쌀고개]
산청 남쪽으로 3번 국도로 나가면 곧 '씰고개' 를 넘게 된다. 이 씰고개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덕촌(德村)마을 동쪽에 있는 함양 오씨 선영(先塋)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닭실이라고 하였고, 그 앞의 작은 동산은 알자리, 알자리 동쪽을 딩기실이라 하였으며, 그 옆의 고개를 쌀고개라고 하였다. 그것은 닭이 있는 곳에 알자리가 있고 옆에 쌀과 딩겨가 있으니 부족함이 없이 먹고 산란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때문인지 함양 오씨들은 자손이 번창하고 가세가 날로 흥성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탁발승이 이 마을에 들렸는데 주인이 박대하여 멍석말이를 하였다. 그것은 세도 있는 집에서 죄를 지은 사람을 잡아서 멍석에 말아 감고 막대기로 두들겨 패는 것을 말하는데 이 곤경에 처한 중이 애걸하여 생명을 부지한 채 내쫓기게 되었다. 그 중이 나와서는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이 고개 이름을 씰고개로 부르라고 권유하였는데 '씰'은 발음이 쌀과 비슷하지만 씱 즉 씰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씱은 닭을 잡아먹는 짐승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부터 이 고개를 씰고개로 부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우연인지 몰라도 함양 오씨의 가세도 예전만 못하였다고 한다.
[송경마을]
송경 마을에는 당산이 세 곳 있다. 매년 섣달 그믐날 밤중에 당산제를 정성스레 지내는데 어느 해의 일이다. 마을에 신행하는 집이 있어 잔치를 했는데 차황 궁소에서 온 어떤 이가 그 잔치에 참여하고 술을 마신 뒤 내일이 설날이고 해서 날이 저물어 돌아가게 되었다. 고개를 올라가다가 아래위에 있는 당산의 중간 지점에서 용변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고 일어나려고 하자 뜻밖에 머리가 여섯개 달린 당산 신이 나타나서 "네 이 놈! 남의 집 앞에다가 똥을 싸는 놈이 어디 있느냐"고 야단을 치면서 밀어버렸는데 그만 실신을 하고 말았다. 가족이 나서서 찾아다가 집에 눕혀 놓았더니 헛소리를 하고 며칠 후 일어나서는 들을 쏘다니면서"대가리 여섯 개 달린 놈 죽인다"고 낮을 휘두르고 떠들더니 그대로 죽었다고 한다.
모고실 이씨 집에 한 어른이 있었는데 축지법을 하여 저녁 먹고 사랑방에 놀러간다 하고는 서울에 가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서 자고는 하였다. 역술에 능통하여 아는 것이 많아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찾아와서 문는 사람이 많았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소를 도둑맞고 와서 묻게 되었는데 괘를 뽑아보고는 말하기를 "아무데 재 밑에 가면 길가에 눈이 있으니 그 논두렁 밑에 가서 갓을 쓰고 똥을 누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소 잃은 사람이 그곳에 가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 어떤 사람 둘이서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허 그 참 오늘은 벌 것을 다 보았네. 아 그 소 몰고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더니 삿갖 쓰고 뒤보는 사람도 다있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일어나서 그 사람을 붙들고 "소 몰고 방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하고 물으니 아무 동네 몇번째 집에서 그런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달려가서 그 집을
찾아 방문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방문 안에는 산 밑으로 굴을 파 연결시켜 놓고 남의 소를 훔쳐다가 몇 마리를 가두어 두었는데 그 가운데 자기 소가 있어 소를 찾게 되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그가 마을 앞 웅덩이에서 가끔씩 낚시질하는 것을 목격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고기가 자주 낚여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마을로 돌아올 때에 보면 잡은 고기는 한 마리도 없이 빈 낚싯대만 들고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보니까 그가 낚싯대를 웅덩이에 던져놓고 나뭇잎을 한 주먹 따서 응덩이에 던지니까 그것이 모두 고기가 되어서 헤엄쳐 다니다가 가끔 낚싯대에 걸려서 올라오기도 하는데 낚시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모두가 나뭇잎이 되어 떠내려가더라는 것이다.
[차탄리]
구향기는 차탄(車灘) 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가락국 시절에 가락국왕이 수정궁으로 향할 때에 수레와 말이 이곳 여울을 건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차탄 위쪽 마을이 장재(莊財)실 인데 장자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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