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不遠人(도불원인)

정운종의 고전공부

고전단상

聖學十圖(성학십도)6_心統性情圖 (심통성정도)

도원 정운종 2018. 11. 12. 18:59

第6圖 心統性情圖
[上圖]
心統性情 심통성정
寂然不動爲性 感而遂通爲情 적연부동위성 감이수통위정
(마음이 性情(본성,감정)을 통괄한다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것이 성이고, 느끼고 통하게 되는 것이 성이다.)
● 爲心之體  爲心之用 위심지체-위심지용 (마음의 본체 - 마음의 작용)
未發之性  已發之情 미발지성-이발지정 (발현되지 않은 본성 - 이미 발현된 감정)
.稟木之秀 具愛之理曰仁  惻隱之心 仁之端
.稟火之秀 具敬之理曰禮  辭讓之心 禮之端
.稟金之秀 具宜之理曰義  羞惡之心 義之端
.稟水之秀 具別之理曰知  是非之心 智之端
.稟土之秀 具實之理曰信  誠實之心 信之端

품목(화/금/수/토)지수 구애(경/의/별/실)지리왈인(예/의/지/신)  측은지심(사양지심/수오지심/시비지심/성실지심) 인(예/의/지/신)지단

(木의 빼어난 기운은 사랑의 理를 갖춰 仁이라 하고 -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고
木의 빼어난 기운은 공경의 理를 갖춰 禮라 하고 –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이고
金의 빼어난 기운은 마땅함의 理로 義라 하고 –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이고
水의 빼어난 기운은 구별의 理로 知라 하고 –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고
土의 빼어난 기운은 실질의 理로 信이라 하고 – 성실지심은 신의 단서이고)

[中圖]
合理氣 通性情 主一身 該萬化
합이기 통선정 주일신 해만화 ,
(이와 기가 합하고 性情을 통괄하여 한몸의 주인이고 모든 변화에 해당한다.)
● ‘心 - 性’
虛靈 / 知覺, 仁義禮智 허령 /지각, 인의예지
(텅비고 신령하며, 지각하고 인.의.예.지가 있다.)
就氣稟中 指言本性 취기품중 지언본성
(부여받은 기 속에서 본성만을 가리킨다.)

● ‘情’
就善惡幾 言善一邊 취선악기 언선일변
(선과 악의 기미중에서 선한 모습만을 말한 것)

四端 : 惻隱, 羞惡, 辭讓, 是非
七情 : 四端 과 喜,怒,哀,懼,愛,惡,欲 (희노애구애오욕)

[下圖]
性本一因在 氣中有二名 성본일인재 기중유이명
(성은 본래 하나로 인하여 존재하는데, 기 속에서는 두 가지의 이름이 있다.)
● ‘心 - 性’
虛靈 / 知覺, 仁義禮智 허령 / 지각, 인의예지
(심성은 텅비고 신령하며, 지각하고 인.의.예.지가 있다.)
本然 - 性 - 氣質
淸濁粹駁 청탁수박 (맑고탁하고 순수하고섞임)
四端 : 理發而 氣隨之 이발이 기수지
七情 : 氣發而 理乘之 기발이 이승지
四端이란 ‘理가 발현하는데 氣가 거기에 따르는 것’이고,
七情이란 ‘氣가 발현하는데 理가 그 위에 올라타는 것’이다.


성학십도(제6) / 심통성정도


[상도(上圖)에 대한 정복심(程復心)의 말]

林隱 程氏曰: 所謂心統性情者,

임은 정씨왈: 소위심통성정자,

임은 정(程)씨는 ‘심(心)이 성(性)과 정(情)을 통솔한다’는 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言人稟五行之秀以生. 於基秀而五性具焉, 於其動而七情出焉.

언인품오행지수이생. 어기수이오성구언, 어기동이칠정출언. 

사람은 오행의 빼어난 기운을 받아 세상에 태어난다. 그 빼어난 기운을 바탕으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다섯 가지 성품이 갖추어 진다. 그 빼어난 기운이 움직임에 따라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등의 일곱 가지 감정이 나오게 된다. 무릇 성과 정을 다 함께 통솔하는 주체는 심(心)이다.


凡所以統會 其性情者, 則心也.

故其心寂然不動爲性, 心之體也; 感而遂通爲情, 心之用也.

범소이통회 기성정자, 즉심야.

고기심적연불동위성, 심지체야; 감이수통위정, 심지용야.


마음과 성정(性情)의 관계는 마음이 성정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통회·통괄이 될 것이며, 마음이 성정을 조절한다는 측면에서는 통섭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요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한 상태 적연부동(寂然不動: 마음이 외물과 관계를 맺기 이전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성(性)이요, 마음의 본체(體)이다. 마음이 현실적 사물을 느껴 두루 통하는 것 감이수통(感而遂通)이 정(情)이요, 마음의 작용이다.


張子曰: ‘心統性情, 斯言當矣’ 心統性, 故仁·義·禮·智爲性, 而又有言仁義之心者'.

 장자왈: ‘심통성정, 사언당의’ 심통성, 고인·의·예·지위성, 이우유언인의지심자

 장재(張載)는 “마음이 성과 정을 통솔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마음이 성을 통솔하기 때문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이 되고 ‘인의의 마음’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心統情, 故惻隱·羞惡·辭讓·是非爲情, 而又有言惻隱之心, 羞惡·辭讓·是非之心者.

심통정, 고측은·수오·사양·시비위정, 이우유언측은지심, 수오·사양·시비지심자

마음이 정을 통하기 때문에 불쌍히 여김, 잘못을 부끄러이 여김, 미워함, 사양함, 옳고 그름을 분별함이 정이 되며, 또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사양하며 미워하기도 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

心不統性, 則無以致其未發之中, 而性易鑿; 心不統情, 則無 以致其中節之和, 而情易蕩.

심불통성, 즉무이치기미발지중, 이성이착; 심불통정, 칙무 이치기중절지화, 이정이탕.

 만약 마음이 성을 통솔하지 못한다면 中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게 되어서 성이 훼손되기 쉽다. 심이 정을 통솔하지 못한다면 나타난 희로애락의 정이 화(和)를 이룰 수 없어 정이 방탕하기 쉽다.

 

學者知此, 必先正其心, 以養其性, 而約其情, 則學之爲道得矣.

학자지차, 필선정기심, 이양기성, 이약기정, 즉학지위도득의.

 배우는 이는 이런 사실을 알아 반드시 먼저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성을 기르고 그 정을 절제한다면 배우는 도리를 얻었다 할 것이다.


[퇴계선생 보완]

臣謹按: 程子<好學論>約其情, 在正心養性之前, 此反居者後, 此以心統性情言故也.然究其理而言之, 當以程論爲順 圖有未隱處, 稍有更定

 (신근안: 정자<호학론>약기정, 재정심양성지전, 차반거자후, 차이심통성정언고야. 연구기이이언지, 당이정논위순 도유미은처, 초유갱정.) 

신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정자의 "호학론(好學論)"에는 “감정을 알맞게 절제한다”는 말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성을 기른다”는 말 앞에 있는데 여기서는 도리어 뒤에 있습니다. 이는 마음이 성과 정을 통솔한다고 말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치를 따져 말한다면 당연히 정자의 논리가 그 순서에 맞을 것입니다. 그림에 온당치 못한 곳이 발견되어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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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하도(中下圖)에 대한 퇴계선생 설명]

右三圖, 上一圖林隱程氏作, 自有其說矣. 其中, 下二圖, 臣妄竊推原聖賢立言垂敎之意而作.

우삼도, 상일도임은정씨작, 자유기설의. 기중, 하이도, 신망절추원성현입언수교지의이작.

 위 삼도 가운데 상도(上圖)는 임은 정씨가 만들고 자기 스스로 설명을 붙인 것입니다. 중과 하 두 그림은 성현이 하신 좋은 말씀과 훌륭한 가르침을 펴신 뜻을 미루어 생각해서 신이 외람 되게 만든 것입니다.

 

其中圖者, 就氣稟中指出, 本然之性不雜乎氣稟而爲言. 子思所謂天命之性,

기중도자, 취기품중지출, 본연지성불잡호기품이위언. 자사소위천명지성,

孟子所謂性善之性, 程子所謂卽理之性, 張子所謂天地之性, 是也.

맹자소위성선지성, 정자소위즉이지성, 장자소위천지지성, 시야.

 가운데 그림은 인간이 받은 기품(氣稟) 중에 내재되어 있는 본연의 성은 기품과는 섞이지 않음을 지적한 말입니다. 자사(子思)의 ‘천명(天命)의 성(性)’이라든가, 맹자의 ‘성선(性善)의 성(性)’이라든가, 정자(程子)의 ‘이(理)의 성’, 장자(張子)의 ‘천지(天地)의 성’이라는 것이 ‘본연(本然)의 성(性)’입니다.

 

其言性旣如此, 故其發而爲情亦皆指其善者而言, 如子思所謂 中節之情, 孟子所謂

기언성기여차, 고기발이위정역개지기선자이언, 여자사소위중절지정, 맹자소위

四端之情, 程子所謂何得以不善名之之情, 朱子所謂從性中流出元無不善之情, 是也.

사단지정, 정자소위하득이불선명지지정, 주자소위종성중유출원무불선지정, 시야.

성(性)을 말함이 이와 같기 때문에 성(性)이 나타나 정이 되는 것도 모두 착함을 가리켜 한 말이니, 자사의 ‘중화로써 절제된 정’, 맹자의 ‘사단(四端)의 정’, 정자의 ‘어찌 착하지 아니한 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는가’라고 할 때의 정, 주자(朱子)의 이른바 ‘성(性) 중에서 흘러 나왔으니 원래 착하지 않음이 없다는 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其下圖者, 以理與氣合而言之, 孔子所謂相近之性, 程子所謂 性卽氣, 氣卽性之性,

기하도자, 이이여기합이언지, 공자소위상근지성, 정자소위 성즉기, 기즉성지성,

張子所謂氣質之性, 朱子所謂雖在氣中, 氣自氣, 性自性, 不相夾雜之性, 是也.

장자소위기질지성, 주자소위수재기중, 기자기, 성자성, 불상협잡지성, 시야.

 그 아래 그림은 이(理)와 기(氣)를 통합하여 말한 것이니, 공자의 ‘인간 각자의 성은 서로 비슷하다’라든가, 정자의 ‘성은 기이고 기는 성’이라든가, 장자(張子)의 ‘기를 바탕으로 한 성’, 주자(朱子)의 ‘비록 현실 속에 있어도 기는 기대로 성은 성대로 서로 섞이지 않는 성’이라 할 때의 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其言性旣如此, 故其發而爲情亦以理氣之相須, 或相害處言`.

기언성기여차, 고기발이위정역이이기지상수, 혹상해처언`.

 성을 말함이 이와 같기 때문에 성이 나타나 정이 되는 것은 이(理)와 기(氣)가 서로 돕기도 하고 서로 모순되어 방해하기도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如四端之情, 理發而氣隨之, 自純善無惡, 必理發未遂而揜於氣, 然後流爲不善.

여사단지정, 이발이기수지, 자순선무악, 필이발미수이엄어기, 연후유위불선.

七者之情, 氣發而理乘之, 亦無有不善, 若氣發不中而滅其理, 則放而爲惡也.

칠자지정, 기발이이승지, 역무유불선, 약기발불중이멸기이, 즉방이위악야.

 이를테면, 사단의 정(情)은 이(理)가 나타날 때 기가 그것을 따르면 저절로 선(善)만 있고 악은 없으나, 이(理)가 나타나더라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기에 가려지게 되면 착하지 못함에 흐르게 되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인 것이며, 칠정(七情)의 정은 기가 나타날 때 이(理)가 그것을 인도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착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만약 기(氣)가 나타나더라도 알맞게 조절하지 못해 이(理)가 소멸되면 인간의 마음이 방탕하여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夫如是, 故程夫子之言曰: “論性不論氣不備, 論氣不論性不明. 二之則不是.

부여시, 고정부자지언왈: “논성불논기불비, 논기불논성불명. 이지즉불시.”

 성(性)과 정(情)에 대한 이치가 이와 같기 때문에 정자가 말하기를 “성을 논함에 있어 기를 논하지 않으면 완벽한 이론이라 할 수 없으며, 기를 논함에 있어 성을 논하지 않으면 밝은 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 기와 성을 둘로 갈라놓으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然則孟子, 子思所以只指理言者, 非不備也, 以其幷氣而言, 則無 以見性之本善故爾, 此中圖之意也.

연즉맹자, 자사소이지지이언자, 비불비야, 이기병기이언, 즉무 이견성지본선고이, 차중도지의야

 그러나 맹자와 자사가 이(理)만을 지적하여 말한 것일지라도 이는 틀린 것이 아닙니다. 기를 함께 말하면 성이 본래 착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이(理)만을 지적하여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중도(中圖)의 뜻입니다.

 

要之, 兼理氣, 統性情者, 心也. 而性發爲情之際, 乃一心之 幾微, 萬化之樞要, 善惡之所由分也.

요지, 겸이기, 통성정자, 심야. 이성발위정지제, 내일심지 기미, 만화지추요, 선악지소유분야.

 요컨대 理와 氣를 겸하고 성과 정을 통솔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성이 나타나 정이 될 한 마음의 기미는 모든 변화의 근본 요인이 되고, 착함과 악함이 갈라지는 시발이 되는 것입니다.

 

學者誠能一於持敬, 不昧理欲, 而尤致謹於此. 未發而存養之功深, 已發而省察之習熟.

학자성능일어지경, 불매이욕, 이우치근어차. 미발이존양지공심, 이발이성찰지습숙.

眞積力久而不已焉, 則所謂精一執中之聖學, 存體應用之心法, 皆可不待外求而得之於此矣.

진적력구이불이언, 즉소위정일집중지성학, 존체응용지심법, 개가불대외구이득지어차의.

배우는 사람은 진실로 경(敬)의 태도를 갖도록 전념해야 합니다. 이(理)와 욕(欲)을 분별함에 어둡지 않고 더욱 (경의 태도를 지니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직 마음이 나타나지 않을 때 마음을 보존해서 성(性)을 기르는 공부를 깊게 한다면, 마음이 나타날 때 능숙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살피게 될 것입니다. 참되게 공부를 쌓아 오래도록 노력하여 끊이지 않으면 이른바 정성껏 한결같이 진실로 중(中)을 잡는 성학(聖學)과 마음의 본체를 잘 보존하고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심법(心法)을 모두 다른 곳에서 구할 필요가 없이 여기에서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